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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제천] 울고 넘는 박달재

러브송. 2009. 5. 16. 06:58
[ 울고 넘는 박달재 ]
조선시대 경상도 쪽의 선비들이 한양을 가려면 죽령을 넘어 단양을 거치고, 제천을 지나 남한강 물길을 이용했습니다. 이때 제천에서 충주 목계나루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고개가 박달재입니다.
해발 503m인 박달재는 1216년 고려의 김취려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며, 1258년에는 충주, 제천, 청풍의 별초군이 몽고군의 침입을 격퇴한 전적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경상도 선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울고 넘는 박달재'로 더욱 유명한 곳입니다.
조선시대에 한양에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 박달(朴達)이 이 고개를 지나다 어느 농가에 묵게 되었고, 그 농가에 살던 금봉이라는 딸이 있어 서로 반해 혼인을 약속하였답니다. 박달은 한양에 온 후로 금봉을 그리워 하다 공부를 제대로 못해 과거에 낙방했고, 박달의 급제를 기원하며 기다리던 금봉은 기다리다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금봉을 찾은 박달도 금봉의 환상을 보았는지 낭떠러지로 떨이져 죽었답니다.
한국전쟁 이후 50년대에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한 가요'울고 넘는 박달재' 덕분에 이 지명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 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요즘은 고개 아래로 터널이 개통되면서 대부분의 차량은 그리로 통과하지만 옛정취를 느끼려는 이들이 이 고개를 다시금 찾는답니다.
비 내리는 날에... 울고 넘는 박달재는 안개에 휩싸여 애잔함을 불러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