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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청도] 청도군의 객사 도주관(道州館)과 석빙고(石氷庫)

러브송. 2007. 7. 12. 23:22
[ 도주관(道州館) ]
이 건물은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도주는 고려시대에 부른 청도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객사에는 정청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이 곳에서 배례하도록 하였고 그 밖에도 접객시설을 갖추어 이 곳을 찾는 관원이 머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건물은 1670년대 현종 때 건립되었으며, 현재는 그 가운데 정청과 동헌만이 남아있습니다. 이 건물은 한동안 화양읍 사무소로 사용되면서 바닥과 벽체가 개조되긴 하였으나 나머지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원군의 명으로 세워진 척화비(斥和碑)가 도주관 앞마당에 옮겨져 있습니다. 이 비는 조선 고종 3년(1886)의 병인양요와 동왕 8년(1871)의 신미양요를 겪은 후 서양인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들에게 경고 하고자 대원군의 명령에 의해 세운 척화비입니다. 이 비는 당시 서울 종로를 비롯하여 전국의 중요한 도로변에 세웠던 척화비 중에 하나인데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것을 도주관 내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비신의 높이는 155cm이고 폭은 45cm이며 두께가 25cm인 작은 비석입니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를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비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한민족의 자주의식을 고취하는데 주는 역사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건물 앞에는 역대 군수들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청도 석빙고 ]
이 석빙고는 조선 숙종때 만들어진 것으로 겨울철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 여름에 사용하기 위한 얼음 저장고였습니다. 얼음은 주로 여름철에 시신보관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석빙고의 입구 좌측에는 동왕 39년(1713)에 세운 비가 있어 축조 연대 및 인력과 공정 기간 등을 알 수 있습니다.
빙실 바닥은 길이 14.75m 폭 5m의 장방형 구조인데 내부는 계단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경사졌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다듬은 돌로 윗 부분을 반원형인 홍예로 틀어 올리고 잡석으로 벽을 쌓았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6基의 석빙고가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이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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