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고도 경주의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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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에서 1,000여 년을 누린 왕조가 있었던 도시는
로마와 경주뿐일 것이다. 그래서 경주는 한 두 번 방문했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자주 찾아가면 갈수록 신비로운 도시가 바로 경주이다.
지난 2000년 11월 유네스코는 경주일대의 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경주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신라시대의 역사 유적들은
그 성격에 따라 5개 지구로 나뉘었는데, 경주남산, 신라 1000년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왕비.귀족들의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릉원지구,
신라 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명활산성지구 등이다.
이 경주 역사유적지구에는 모두 52개의 지정문화재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경주는 어디를 가나 역사유적지구이고, 땅을 파기만 하면 유물이
쏟아져 나올 정도이다. 세계에 유례가 드문 경우이다.
4월에 찾은 경주는 꽃들의 향연으로 연분홍 구름 위에 떠있다.
[ 대릉원 ]
경주에 가면 으례 들르는 곳이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대릉원이다.
이 가운데 대릉원에는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 등 황남동에 자리한
신라고분군을 부르는 이름이다.
23 기의 능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지난 1973년 내부를 공개한
천마총 덕에 더욱 유명해졌다.
[ 천마총 ]
천마총은 아직도 누구의 무덤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무덤으로 추정된다.
밖에서 보면 높이 12.7m의 거대한 원형 봉분이고, 밑지름 47m이며
내부는 관과 곽위에 강돌을 쌓은 직석목판분이다.
천마총은 대릉원의 서북쪽에 위치한 고분으로 원래 경주155호 분이라고
불려왔는데, 1973년에 발굴되었다.
무덤 내부에서 이제까지 발굴된 금관중 가장 화려한 금관, 상단은 둥글고
밑으로 갈수록 넓어져서 하단은 반원형이 되어 양 끝이 처진 형태의 금모,
그리고 금제과대, 요패, 팔지, 목걸이, 환두대도, 금제조익형관식과
금제접형관식, 금동제경갑 등의 유물과 이외에도 많은 칠기와 그릇 등이
발견되었다.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에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관의 천판과 지판 사이에 끼우는 양 옆의 널)이 주목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천마총 안으로 들어가 목관분의 구조를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원형의 내부 벽면에 이곳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첨성대 ]
천채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관측대로서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모양의 원통부분이
올려져 있고, 맨 위에 우물정자형의 정상부가 얹혀진 모습이다.
원통부는 부채꼴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사람이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가
농업국가로 들어서면서 천체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였던 증거이기도 하다.
[ 황룡사터 ]
신라 진흥왕 때에 착공하여 선덕여왕 14년에 완성된 황룡사는
신라 호국 신앙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239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터는 1976년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면적이
동서의 길이가 288m 남북의 길이가 281m 로써 총 대지면적이
무려 2만 평에 이른다.
황룡사터 금동삼존장륙상 대좌 자리가 있는데 이 불상의 규모는
1장 6척의 석가여래삼존상 그리고 좌우로 십대 제자상과 신장상
2구가 있었다. 보존상 무게는 3맘5천7근, 황금 1만198푼이 들었으며
두 보살의 무게 1만136푼이 들었다고 한다.
[ 안압지-임해전터 ]
안압지는 월성의 북동쪽에 있다.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기르고
진기한 동물들을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는 정교하고
물이 들어오는 수로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로서는 신라 특유의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것이 많다. 불교 예술품으로서
금동여래삼존상과 금동보살상 등의 우수한 작품이 발견되었고
나무의 배, 건축 부재, 목간 등도 발견되었다.
[ 석빙고 ]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 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 경주계림 ]
이 숲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하여 성을 김,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 구림 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 경주보문단지 ]
경주시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된 종합관광단지이다.
보문단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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