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아르헨티나

[남미여행/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에비타가 잠든 레콜레타 묘지

러브송. 2018. 3. 20. 17:04



11월 10일 음악이 흐르고 춤이 살아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첫나들이를 시작했다.

기온은 15도~29도, 화창한 더운 날씨, 햇볕이 매우 따갑다.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햇볕에 나가면 살이 타는듯한 날씨다.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먹고 서둘러 간 곳이 공동묘지 레콜레타다.
레콜레타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레콜레타행 버스는 오지 않았다.

구글 검색이 잘못되었는지 어제 공항에서부터 검색된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통카드 숩테까지 사놓았지만, 아르헨티나에 머문 3일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교통카드는 아르헨티나 방문 기념으로 그냥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서 택시를 타고 레콜레타로 갔다.
60여 개국을 여행했지만, 이렇게 마음 편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는 처음이었다.





택시 기사 좌석 뒤에 승객이 잘 보이도록 운전기사에 관한 정보가 걸려있었다.

택시 기사는 속이지도 않고, 둘러가지도 않고, 요금은 미터요금대로 내면 됐다.

약간의 잔돈은 그냥 팁으로 줬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여행할 때는 택시를 이용했는데, 택시로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첫 여행지가 공동묘지라니 좀 그렇긴 하지만 루트 상 제일 먼저 이곳으로 왔다.

땅값이 비싼 도심 속에 공동묘지라니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공동묘지 레콜레타 주변은 나무가 우거진 공원이었다.





공동묘지 앞 공원에는 보라색 꽃 자카란다(Jacaranda)가 만발해있었다.

자카란다는 이른 봄부터 늦여름까지 보라색으로 도시를 물들인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로수는 거의 보라색 꽃 자카란다였는데, 지금껏 보지 못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라는 타이틀이 붙은 레콜레타 입구 모습이다.

묘지 정문은 오페라하우스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레콜레타 공동묘지는 아르헨티나가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조성된 것으로

레콜레타는 '밖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영혼들에게 편히 쉬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레콜레타는 세계 3대 묘지 중 하나로 에바 페론이 묻힌 묘지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아르헨티나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르헨티나를 빛낸 저명인사들이 고이 잠들어 있다.





레콜레타가 아르헨티나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소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공동묘지 분위기는 엄숙하다기보다는 관광지나 축제장에 온 것처럼 북적였고 다소 소란스러웠다.
특히 유명인의 묘지 앞에서는 더욱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였고,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았다.





'레콜레타'의 뜻은 정신적인 묵상을 하러 가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본 레콜레타는 죽은 자들이 묻혀있는 묘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이 거주하는 하나의 건축물처럼 보였다.
매장문화가 있는 아르헨티나의 레콜레타 묘지는 마치 개인 주택처럼 대리석을 활용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은 관을 땅속에 매장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밀봉해 구멍을 내서 썩지 않게 미라처럼 만든다고 한다.
이곳에는 6,000개의 묘가 있다.





묘지가 죽은 자의 생전 권력이나 부를 상징하는 것처럼 크기나 규모가 천차만별이다.

단층도 있고 복층도 있고, 잘 지어진 묘지는 지하에도 몇 개 층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독립 영웅들과 아르헨티나의 유명인사들이 모두 묻혀있다고 한다.
부의 척도에 따라 화려하고 다양한 조각품들도 볼 수 있다.

묘지는 최하 5억 이상이 든다고 하니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죽은 자의 부를 나타내는 고급주택이나 마찬가지다.





화려한 조각품과 대리석으로 치장된 각양각색의 묘지들.

죽어서도 엄청난 부를 누리는 죽은 자들, 이 풍경을 보고 있는 가난한 산자의 심정은 어떨까?





죽은 자의 생전의 권력이나 부를 상징하는 이곳도 이젠 포화상태라 자리가 거의 없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지도를 들고 저마다 자신이 가보고 싶은 묘지를 찾아간다. 마치 유명 건축물을 순례하는 것처럼. 

 




공동묘지 내부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묘지탐방은 내리쬐는 뙤약볕을 받으며 걸어야 하니 땀이 절로 났다.




[ 레콜레타 내부 모습 ]



















[ 에바 페론 납골당 ]




관광객들은 대부분 에바 페론의 묘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그녀의 묘를 보기 위해 갔었으니까. ㅎ

빼곡하게 늘어선 묘지 속에서 에바 페론의 묘를 찾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입구에서 묘 위치를 알아서 가거나 지도를 가지고 찾는 게 훨씬 낫다.

걷다가 보면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서 웅성거리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에바 페론이 묻힌 곳이다.





레콜레타는 에바 페론의 묘가 있어 관광객들이 찾는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에바 페론이 묻혀있는 묘지의 좁은 골목길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방문객들이 꽉 차 있다.

사람도 많고 좁은 골목길이어서 사진 촬영하기도 쉽지가 않다. 
묘지 앞에서 왜 인증사진을 찍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대리석으로 고급스럽게 조성된 에바 페론의 묘,

그녀의 묘지 문 십자가에는 누군가가 걸어놓은 예쁜 꽃들이 묘비를 지키고 있다.

방문객들이 묘지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살아있을 때처럼 고인이 되었어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그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에비타 묘지의 명판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바 페론.

빈민층에 손을 내밀었던 성녀와 나라의 경제를 파탄 낸 악녀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가진 에바 페론.

그녀를 살아있을 때보다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뮤지컬과 영화로 만들어진 'EVITA' 덕분이다.

그녀의 애칭이었던 에비타는 마돈나가 부르던 음반 'Don't cry for me Argentina'로 세계 곳곳에 알려지게 되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아르헨티나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에비타는 1919년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서 15살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다.

1943년에 당시 육군 대령이었던 후안 도밍고 페론을 만나서 결혼하고, 남편이 1946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뒤에는

강력한 페로니즘의 독재 정치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페로니즘(Peronism)은 1946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이 10여 년간 국가 주도적으로 펼친 대규모 무상복지 정책을 말한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영부인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부귀영화도 잠시, 33세의 젊은 나이로 암에 걸려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도심 속에 있는 공동묘지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