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그라 성 배치도]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과 함께 아그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아그라 성과 타지마할은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2.5km 떨어진 곳에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야무나 강변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아그라 성은 무굴제국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성채가 겹겹이 쌓여 단단한 요새를 이루고 있다.
1566년에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가 지은 성으로 폭이 2.5㎞, 높이 20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건설 당시만 해도 크고 작은 전쟁으로 군사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악바르 이후 제한기르와 샤자한으로 가면서
평화로운 통치가 이어져 이곳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졌던 예는 없다.
이 성은 샤자한이 폐위된 후 죽을 때까지 아내 뭄타즈마할이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아그라 성은 온통 붉은 벽돌로 단순해 보이는 외관이지만
성안으로 들어가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의 남쪽 문에 해당하는 아마르 싱 게이트 (Amar Singh Gate)다.
아그라 성에는 동서남북에 네 개의 문이 있는데, 현재는 남쪽의 아마르 싱 게이트와 서쪽의 델리 게이트로 통행할 수 있다.
그러나 델리 게이트는 인도군 낙하산부대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다.
아마르 싱 게이트는 1568년 악바르에 의해 이 문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명 악바르 문(Akbar Darwaza)으로 불린다.
매표소엔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었는데, 외국인보다는 인도인이 더 많았다.
인도 관광지 어딜 가나 12억 인구를 자랑하듯이 여행자보다는 인도인이 훨씬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 여행자들이 신기한 듯 빤히 쳐다보는 것은 기본이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구하기도 한다.
외국인 입장료는 250루피다. 타지마할 입장료를 보여주면 ADA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아마르 싱 게이트를 지나면 두 번째 문인 하티 폴(Hathi Pol)이 나온다.
하티 폴은 코끼리 게이트로 두 개의 높은 기둥이 문 양쪽을 받치고 있다.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양들이 그려져 있는 하얀 대리석 건물과 붉은 성채가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정교한 아름다움을 준다.
하티 폴을 지나면 아그라 성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경사가 나타난다.
길 양쪽으로 높은 벽을 쌓아 침입한 외적을 위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외적이 두 개의 성문을 다 뚫고 침입했을 때 이 경사로에 기름을 부어 적이 올라오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고 한다.
성문 통과 후 오른편에 자한기르 궁전 (Jahangir Palace)이 나온다.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으며, 이슬람과 힌두양식이 서로 결합한 건축물이다.
악바르는 자이푸르의 공주를 정실로 들일 정도로 힌두와의 융합을 중요시했다.
자한기르 궁전과 같은 이슬람과 힌두의 혼합된 건축 양식에서도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궁전 내부는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궁전은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 양 끝에는 작은 탑이 올려져 있다.
자한기르 궁전은 악바르 황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지은 것이었지만
자한기르는 아버지 악바르와 그리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유는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 방법에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굴제국의 후계자 계승은 장남에 의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제로 결정되기 때문에
왕권교체기에 혈육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자들은 황제가 죽거나 중병에 걸렸을 때 정권을 이양받기 위해 개인 군대를 거느렸고
이는 무굴제국 치세 내내 끝없는 피를 부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무굴제국의 정권 이양은 한 번도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한기르 궁전 중앙에는 넓은 정원이 있다.
정원 한가운데 돌로 만든 반구형 석조가 있는데, 황태자였던 자한기르가 이곳에서 장미 수(Rose water) 목욕을 했다.
이 욕조는 영국군에 의해 옮겨질 뻔했으나 무거워서 이곳에 그대로 놓여있다.
궁전 입구 아치문 벽에는 '다윗의 별'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스라엘 국기의 문양이기도 하다.
정삼각형은 종교 지도자를, 역삼각형은 신앙지도자를 나타내는데, 그것이 결합된 것이 다윗의 별이다.
종교와 신앙이 결합한 형태,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다윗의 별은 그 당시에 악마를 쫓는 힘의 상징이었으며, 유대인은 물론, 기독교인, 아랍인 모두 이를 부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자한기르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안에는 파란 잔디가 있는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이 궁전을 지나면 왕의 공식 접견실인 디와니암(Diwan-i-Am)과 개인 접견실인 다와니카스(Dowan-i-Khas),
카스 마할(Khas Mahal)로 이어진다.
샤자한 게이트는 황제가 대중들을 알현하는 궁전인 디와니암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자한기르의 뒤를 이어 샤자한도 1648년까지 이곳 아그라 성에 살았다.
그 뒤 1666년 숨을 거둘 때까지 마지막 8년을 아그라 성 무삼만 버즈에 유폐되기도 했다.
그는 북쪽 공간에 흰 대리석 궁전을 지었으며, 대표적인 궁전이 카스마할, 디와니카스, 디와니암이다.
디와니암을 보고 샤자한 게이트를 통해 다시 나오게 된다.
디와니암(Diwan-i-Am)
디와니암은 1628년 샤자한 황제가 만든 왕의 일반인 접견실과 강연장이다.
초기 목조건물을 붉은 사암으로 재건축하여 그 위에 백색으로 회칠을 했다.
디와니암은 황제가 사무적인 일이나 건의사항을 들을 때 사용했다.
디와니암의 나뭇잎 모양 아치가 이어진 모습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건물 외부, 내부는 매우 화려하고 호화롭게 지어져 있다.
생뚱맞게도 디와니암 정원 한 가운데에 무덤이 하나 있다.
영국이 지배할 당시 인도 북서지역 부총독을 지낸 존 러셀 콜빈의 무덤(Tomb of John Russell Colvin)이다.
세포이 항쟁 때 아그라 성이 너무 아름다워 이 곳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1857년 옛 무굴제국 출신 병사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세포이 반란(Sepoy Mutiny)을 영국이 완전히 진압함으로써
무굴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영국은 인도를 장악했다.
디와니암 건물 옆에는 무굴제국의 여인들이 애용했던 레이디스 바자르(Ladie's Bazaar)가 있다.
레이디스 바자르는 여성전용 시장으로 남자는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 악바르 황제는 여자로 분장한 채 자주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샤자한과 뭄타즈마할도 이곳 바자르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도 꼬마들, 너무 귀엽게 생겼다.
하얀지붕의 아름다운 건물은 Moti Masjid로 이슬람 사원이다.
샤자한이 만든 궁전 카스마할이다.
카스 마할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성스러운 궁전'이란 뜻으로, 아그라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정원의 한가운데 수조 형태의 단이 만들어져 있다.
포도나무 정원으로 불리는 앙구리 박(Anguri Bagh)에는 포도나무는 없고, 화초를 심어놓았다.
카스 마할 옆에는 8각형의 탑 형태 건물인 무삼만 버즈(Muthamman Burj)가 있다.
카스마할은 샤자한이 딸을 위해 지은 궁전이다. 원래는 지붕이 모두 금칠이었다고 한다.
카스마할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카스마할 내부는 양각으로 조각한 벽장식이 화려하고 이곳 역시 피에트라 듀라 기법으로 장식되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다.
격자창 사이로 보면 샤자한이 애타게 바라보았던 타지마할이 보인다.
무삼만 버즈(Muthamman Burj)는 '포로의 탑'이란 뜻이며, 샤자한이 1666년 숨을 거두기까지 마지막 8년을 보낸 곳이다.
샤자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 아우랑제브는 1658년 큰 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무삼만 버즈에 유폐시켜버렸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 샤자한에 대한 아우랑제브의 학대는 대단했다고 한다.
아그라 성 옆에 흐르는 야무나 강을 막아 여름 한 철 동안 짠맛 나는 우물물만 마시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자한이 말년에 아들에 의해 이곳에 유폐되어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의 무덤 타지마할을 지척에 둔 채 이곳에서 쓸쓸히 죽어가야만 했다.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삼만 버즈에 갇혀 끝내 숨을 거두고서야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타지마할로 갈 수 있었다니 샤자한의 운명도 기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삼만 버즈 내부의 기둥과 벽은 피에트라 듀라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카스 마할 못지않게 화려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과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2.5km 떨어진 곳에 마주 보고 서 있다.
무삼만 버즈의 테라스에 서면 샤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을 애도하며 만들었다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아내의 무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을 샤자한의 애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살아서는 결코 손에 닿을 수 없어 샤자한의 가슴만 타게 했던 타지마할은 야무나 강변에 신비로운 모습으로 서 있다.
아그라 성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이스박스에 생수랑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생수 한 병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100루피란다.
생수가 보통 10루피에서 30루피 정도 하는데, 100루피라니 바가지가 심해도 엄청나게 심했다.
안 산다고 뒤돌아왔더니 50루피로 깎아준단다.
참 어이가 없어서, 인도인들은 외국인이 그저 돈으로 보이나보다. ㅎㅎ
타지마할 남문에서 릭샤왈라와 타지마할에서 아그라 성까지 그리고 아그라 성을 구경하고 난 뒤
타지마할 동문까지 160루피로 흥정했었다.
아그라 성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그 릭샤왈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호텔 근처인 타지마할 동문까지 데려다주었는데, 200루피를 줬더니 잔돈이 없다고 했다.
거스름돈으로 40루피를 내줘야 하지만 30루피밖에 없단다.
상술인 것 같았지만, 그냥 30루피만 받고 말았다.
나에게 있어 인도는 이래저래 정이 안 가는 나라다.
타지마할 동문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바로 호텔인데, 날씨도 덥고 몸이 지쳐서 그런지 천리길 같았다.
저녁 먹으러 다시 나가기도 귀찮고 호텔 음식은 맛이 없다.
그냥 즉석국이랑 과일로 끼니를 때우고 약을 먹었다.
약 기운으로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더운 날씨 탓에 몸은 점점 더 아파만 왔다.
내일 아침에 자이푸르로 떠나는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 20분에 릭샤왈라가 픽업을 오기로 했다.
오늘 자고 나면 무거운 내 몸이 한결 가벼워지길 바라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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