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아 그 라

[인도/아그라] 바라나시에서 12시간 기차를 타고 아그라로 이동하다.

러브송. 2016. 3. 25. 20:26




바라나시 일정을 마치고 오후 6시 15분 기차를 타고 아그라로 가는 날이다.

4시쯤 쇼핑몰에서 나와 바라나시 정션역까지 100루피에 흥정하고 릭샤를 탔다.

나중에 또 딴소리할까 봐 두 사람 요금이 100루피라고 분명히 못 박아두었다.






기차역이 가까워지자 좁은 골목길에는 릭샤와 사람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이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 나는 또다시 카오스 속으로 들어왔다.

인도인들은 매일 이런 환경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까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정에 흔들림 없이 현실을 조용히 수용할 줄 아는 인도인들,
모든 일이 자신의 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는 일이니까 수용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 현실을 수용하게 하는 삶의 지혜를 내려주었나 보다.






No Problem!

인도인들이 언제나 입에 달고 다니는 말, No Problem!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해 보이고 주어진 상황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도인들을 보면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인도인들을 보면 인간의 행복이 물질적인 것에 달린 게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 달려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승에서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면 다음 생에는 더 나쁜 카스트로 태어난다는 힌두교의 윤회 사상이
그들을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들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는 나는 행복할까?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도 집착과 소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나는 어쩌면 그들보다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로마의 대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까지 가려면 최소한 12시간은 가야 한다. 그것도 연착하지 않을 경우다.

인도 기차는 연착을 밥 먹듯이 하니까 언제 아그라에 도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기차간에서 먹을 바나나 한 송이를 샀다. 그리고 생수도 넉넉하게 두 병이나 샀다.






기차역사 밖에서부터 사람들이 진을 치고 앉아있었다.

아,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건가.





땅바닥이 자기네 안방인 것처럼 편하게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는 인도인들,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한 젊은이가 우리 주위를 한참 맴돌더니 말을 붙인다. 어디서 왔냐고 어디로 가냐고. 늘 받는 질문이다. 

우리는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고, 지금은 인도 여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댕큐!"라고 했다.

인도인들은 이방인인 우리가 참 궁금한가 보다. 인도인들은 타인에 대해 호기심도 많은 것 같다.





기차역에서 수많은 사람을 보아도 이젠 놀랍지 않다. 여기는 인도이기 때문이다.

이미 콜카타 하우라 역에서 충분히 체험했고, 이젠 혼잡한 인도의 기차역 분위기에 제법 익숙해졌다.






나도 인도사람처럼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서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22일 동안 여행하면서 내가 가지고 다닌 짐은 5kg짜리 배낭 하나와 크로스 가방 하나다.

여행하다 보면 엄청난 크기의 배낭을 메고 다니는 여자들도 종종 눈에 띈다.

물론 장기간 여행을 하려면 더 많은 짐이 필요하겠지만,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다니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배낭 여행할 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배낭을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없어도 그만인 물건은 과감히 빼버리고 무조건 가볍게 하는 게 나의 철칙이다.

배낭의 무게는 전생의 업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럼 내 전생의 업보는 5kg... ㅋㅋ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전광판에 떴다.  Train No.14863 18:15 플랫폼 D 9

이번 기차 등급도 역시 AC 2 Tier(2A), 요금은 1인당  RS.1,300(약 23,000원), 역시 한국에서 예약해갔다.

인도 기차 등급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카스트 신분제도를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등급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나고, 서비스가 달라지고, 쾌적도도 달라진다.

1A 칸은 에어컨이 나오는 1등 침대칸으로 2개의 침대가 한 컴파먼트(작은 방)에 있는 형태다.

2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으니 얼마나 쾌적하겠는가. 브라만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A 칸은 기차 등급 중에 최고의 등급으로 1A 칸이 없는 기차도 많았다.

2A 칸은 에어컨이 있는 2등 침대칸으로 4개의 침대가 한 컴파먼트에 있는 형태다.

크샤트리아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브라만급의 1A는 가격이 비싸서 타지 못했고, 주로 2A를 탔다.
3A 칸도 크샤트리아급 정도다. 배낭여행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SL 칸은 평민 계급인 바이샤급,

그다음은 지정석이 아닌 의자 칸은 수드라급, 가장 낮은 등급인 P 칸은 가끔 동물도 함께 탄다니

어느 등급에도 속하지 못한 불가촉천민쯤 될 것 같다.






전광판에 기차정보를 보고 있는 사람들.

인도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하는 법이 없다. 연착은 당연하고 제시간에 오면 오히려 이상한 일처럼 생각된다.

인도는 늘 기다려야 한다. 기차를 기다려야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사람에게는 정말 속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질서란 걸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고, 체계적인 시스템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닌 나라가 바로 인도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는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를 거쳐 조드푸르로 가는 기차다.

기차번호 14863을 확인하고 2A 칸을 찾아갔다.






이번엔 4명이 한 공간에 있는 자리가 아니라 통로 쪽 옆에 아래위 두 칸짜리였다.

그 자리는 4명이 한 공간에 있는 것보다는 독립적이어서 좋았다.

두 번째 타는 기차라 익숙한 솜씨로 배낭을 와이어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로 채워두었다.

검표원이 기차표를 확인했다. 맞은 편에 탄 인도 아주머니와도 인사를 나눴다.

인도에서 2A 정도만 타도 때깔이 달라 보였다.

그녀는 화장실 가면서 우리에게 짐을 봐달라고 했다.

그녀 바로 옆에 인도사람이 있었지만, 자기 나라 사람보다 외국인인 우리가 더 믿을만한가 보다.

하기야 내 얼굴이 '착함' 그 자체 아니던가. 하하

기차는 6시 15분에 바라나시 정션역을 출발해서 아그라로 향했다.

인도 기차는 워낙 연착이 많아서 가능하면 그곳에서 처음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하는 게 현명하다.

정시에 아그라에 도착하기를 빌면서 침대에 누워서 일기를 썼다.

역시 에어컨이 세게 나온다. 긴소매 셔츠를 입고 그 위에 또 점퍼도 입었지만 역시 추웠다.

추워서 오돌오돌 떨었더니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약을 먹고 자려고 했지만, 너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차창밖엔 유쾌하지 않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볼일을 보고 있는 인도인들, 기차 안에서 쳐다봐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들은 그저 배설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 또한 문화 차이가 아니겠는가.

인도 기차에도 객차 사이마다 세면대와 화장실이 비치되어 있다. 좌식 변기도 있고, 입식 변기도 있다.

변기 옆에는 물을 담는 작은 바가지가 비치되어 있고, 화장지는 없다. 
볼일을 보면 그 배설물은 철로로 그대로 낙하(落下)된다. 우리나라 기차도 예전엔 그랬던 것 같다.

화장지가 없는 걸 보면 일을 보고 난 뒤처리는 인도식으로 바가지에 물을 담아 씻는 모양이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은 일이 터져버렸다.

열차 안에서 내 신발 한 짝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탄 객차 안을 모조리 뒤져봐도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내려야 할 아그라 역은 가까워져 오는데, 정말 큰일이었다. 옆에 있던 인도인들도 같이 운동화를 찾아주었다.

객차 역무원도 함께 구석구석을 살피며 찾았지만, 내 신발 한 짝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12시간 오는 동안 두어 차례 사람들이 내리고 새로 타기를 반복했다.

그중에 누가 내 운동화를 왜 가져갔을까?

인도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보통은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다니는데, 운동화가 왜 필요했을까? 그것도 한 짝을...ㅠㅠ

결국, 나는 신발 찾는 걸 포기하고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슬리퍼를 안 가져갔으면 나는 꼼짝없이 소똥이 널려있는 인도 거리를 맨발로 걸어가야만 했다.






하도 희한한 일을 당해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잔 부시시한 얼굴로 한 짝 남은 운동화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ㅋㅋ

인도 사상에 따르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의 섭리라고 한다.
내가 인도에 오고, 이렇게 기차간에서 신발을 잃어버리고, 한심스럽게도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일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몇천만 번의 업을 거쳐 신에 의해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그러기에 인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바로 "No problem!"이다.






새벽 6시 30분경에 아그라 포트 역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서 출발한 기차는 아그라 포트 역까지 거의 연착 없이 12시간 정도 걸렸다.

인도 기차는 안내방송이 없으므로 기차표에 적힌 도착시각이 가까워지면 주변의 인도인에게 묻거나
구글 맵을 켜놓고 내려야 할 역이 어딘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른 시간이지만 역은 여전히 붐볐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릭샤꾼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아그라가 바가지로 악명높은 곳이 아니던가. 아그라는 인도 여러 도시 중 최악의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릭샤꾼과 흥정하는 것도 귀찮아서 조금 더 비싸더라도 정찰제 요금인 프리페이드 부스에서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명의 릭샤꾼이 우리를 따라오더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몇 사람은 떨어져 나갔다.

아그라 포트 역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프리페이드 부스가 보이지 않았다.

바가지가 판을 치는 이런 곳에 프리페이드 부스 하나 없다니 참 이상했다.

할 수 없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릭샤꾼과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릭샤꾼은 호텔 타즈 프라자까지 200루피나 달라고 했다.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어쩌고저쩌고하면서 200루피도 아주 싼 가격이라고 우겼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더니, 우리 뒤를 따라와서는 150루피를 불렀다.

100루피라고 단호하게 말했더니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케이! 라고 했다.

인도에서 야무지게 배운 게 흥정이라, 이젠 흥정도 제법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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