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도시로 가려는 자, 나를 지나가라.
영원한 고통으로 가려는 자, 나를 지나가라.
영혼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가려는 자, 나를 지나가라.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은 1880년 정부로부터 파리 공예미술관 입구에 세울 청동 문 제작을
의뢰받습니다. 당시 단테의「신곡」에 심취해 있던 로댕은 단테 의 「신곡」중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어 전체 내용을 구상했고,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에도 영향받아 수많은 인체들의
움직임을 조각해서 「지옥의 문」을 제작합니다. 훗날 공예미술관 건립 계획이 취소되어
로댕은 7년동안 받았던 돈을 돌려주자 「지옥의 문」은 온전히 로댕의 것이 되었습니다.
로댕은 수백 개의 드로잉과 인물 습작을 통해 「지옥의 문」을 제작해냈습니다.
「지옥의 문」은 욕망과 쾌락, 절망과 공포 등 인간의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다양한 군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옥의 문」에 현재 남아있는 등장 인물의 수는 200여 명을 헤아립니다.
작업 기간 동안 만들고 또 망치로 부순 형상을 다 모으면 곱절이 더 될 것입니다.
로뎅은「지옥의 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지옥의 문」은 조각가 로댕의
인생의 궤적을 담고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
한 남자가 벼랑 끝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부터 이렇게 앉아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무엇이 그를 이토록 깊고 고통스러운 생각에 잠기게 한 걸까요?
언제 누가 돌연히 나타나서 그를 생각의 깊은 잠으로부터
흔들어 깨울 수 있을까요?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세상의 끝입니다.
지옥의 가파른 절벽 위에 솟아 있는 벼랑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지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홀로 벼랑 끝에 앉아 지옥의 풍경을 내려다봅니다.
그의 찌푸린 미간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메아리칩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지옥을 여행한 이탈리아 시인 단테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1880년에 로댕이 만든 작품입니다.
로댕은 차가운 청동의 조형에 더운 영혼의 열기를 가두었습니다.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서 인간을 탐구합니다.
지옥을 여행한 시인 단테의 눈을 빌어서 인간 존재의 본성을 해부합니다.
[세 그림자]
나는 길을 잃었네. 내 삶의 한복판에서, 어두운 숲 속에서.
로댕의 지옥문 맨 위에 '세 그림자'입니다. '세 악령'이라고도 불립니다.
세 그림자의 어깨는 절망에 짓눌려 있습니다. 세 그림자가 가리키는 곳은 절망의 늪입니다.
단테가 지옥 입구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 내면의 추악한 실체를 표현한 게 아닐까요?
[우골리노]
그 죄인은 끔찍한 음식에서 입을 떼자,
뒤통수부터 뜯어 먹던 그 머리의
머리칼로 입을 닦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골리노는 피사의 지체 높은 귀족입니다.
피사와 피렌체는 지중해 해상권과 항구 교역권을 두고 이권 다툼이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중세시대에 피사는 피렌체 못지않게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피렌체와의 일전에서 크게 패한 뒤 피사는 영원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골리노는 피사의 백작이지만 피렌체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골리노를 몹시 미워하던 피사의 대주교 루지에리는 그를 네명의 아들과 손자들과 함께
탑에 감금하고 철문을 잠그고 탑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풀어 주지 않았습니다.
우골리노는 굶주림에 못 이겨서 끝내 자식들의 몸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성을 잃고 미쳐버렸습니다.
우골리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더욱 소름이 돋습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우골리노가 절망에 못이겨
제 팔을 깨무는 것을 본 아이들은 아버지가 배가 고파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매달려 차라리 자기네 몸을 찢어서 허기를 달래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비참한 살점은 아버지가 입혀 주신 것이니 아버지가 벗겨 주십시오.
고통을 그만 덜어 주십시오.
우골리노에게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들은 차례로 죽어가고 우골리노 눈에는 피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절망으로 눈을 잃고 그만 장님이 되었습니다.
장님이 된 우골리노는 죽은 아이들의 살점을 뜯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통과 절망에 굴복하지 않았지만, 배고픔과 고독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짐승과 인간의 경계는 어디쯤일까요?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인간다워질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 짐승의 본능을 일깨우고 스스로를 죄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입맞춤]
여자가 포도넝쿨처럼 남자의 몸을 휘감습니다.
왼팔로 남자의 목을 감아쥐면서 제 몸을 비스듬히 눕힙니다.
두 사람은 입맞춤을 나누고 있습니다.
로댕의 입맞춤은 죽음보다 달콤하고 사랑보다 혹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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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은 단테「신곡」지옥편 5곡에 나오는 육욕의 이야기를 형상화했습니다.
입맞춤의 주인공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입니다.
라벤나 성주의 딸 프란체스카와 리미니의 성주인 잔초토가 혼인을 하게 됩니다.
잔초토는 절름발이에 용모가 추해서 첫선을 보는 자리에 동생 파올로를 보냅니다.
잘 생긴 파올로는 아름다운 프란체스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두 사람의 몸과 영혼을 깡그리 태우도록 사랑의 불은 꺼질 줄 모릅니다.
이를 알아차린 잔초토는 질투에 눈이 멀어 두 연인을 죽이고 맙니다.
두 연인은 육욕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모여 고통받는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입맞춤으로 서로의 운명을 위로합니다.
연인들의 뜨거운 피는 지옥에서도 식을 줄을 모릅니다.
[허무한 사랑]
육욕죄를 지고 형벌을 받은 남자를 등에 업고 도주하는 여인의 모습입니다.
단테「신곡」지옥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육욕죄를 진 자들이 끊임없이 폭풍에 시달리며
지옥을 떠도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등은 깊이 파였으며, 남자의 토르소는 평평하고 다리가 늘어져 있습니다.
젊은 남자의 얼굴을 로댕은「슬픔의 머리」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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