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이마, 짙푸른 빛의 신비스러운 눈,
육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오만한 입술,
허리까지 늘어뜨린 밤색과 적갈색이 어우러진 고혹적인 머리칼,
나를 부르는 까미유 끌로델은 누구인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찬 짙푸른 눈동자,
아름답고 품위있는 자태, 대담함, 꾸밈없는 솔직함, 오만함,
쾌활함이 조화된 인상적인 태도, 너무나도 많은 것을 타고난 여인,
천부적 藝人이었으며, 로댕의 연인이었으며,
모순된 사회에 질식되어 비극적 종말을 맞는 비운의 여인,
19 세기의 천재적인 조각가인 까미유 끌로델은 누구인가?
[다나이데, 로댕作]
로댕의 까미유는 영원한 토르소, 백금빛이 흐르는 육체의 신화,
머리 가슴 영혼이 황금비율로 나누어진 존재다.
그녀의 내면은 분화구처럼 뜨거워 다가갈 수 없고
어린아이와 같아서 로댕의 가슴에 가둘 수가 없다.
아, 까미유! 내가 근시안인 것은 운명!
로댕은 마흔셋, 까미유는 열아홉 살,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의 위력 앞에서
로댕은 철부지 소년이 되고 까미유는 그의 연인이 되었다.
그녀를 만나는 동안 로댕의 가슴은 홍역을 앓는 소년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로댕과 합일하기에는 그녀는 이미 스승이었다.
로댕과 까미유는 서로의 예술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서로에게 잠재되어 있던 천재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사색, 팡세]
나는 이제 막 이해했어.
나의 형상들은 바로 너라는 것을..
감속됐다가 다시 시작하고, 구원되었다가 형벌을 받고 하는 너..
그렇지만 매 순간 다시 나타나는 너의 육체, 육체의 부활을 연상시키는 너..
너는 소녀이자 죽음, 순교자, 사형수, 천벌받은 자..
그리고 또 너는 덧없는 사람이고, 암코양이고, 쭈그린 여인이고,
추락하는 남자이며, 지상에 남은 환상이고, 영원한 봄..
이제 난 모든 것을 알았어. 사랑의 끝없는 밤, 끝없는 사랑의 밤을,
너, 나의 영원한 우상이여...
[왈츠, 까미유]
로댕은 그의 모델, 완벽한 이브를 찾았고, 그녀는 그의 것이었다.
로댕에게 까미유는 흰 날개를 어깨에 달고 있는 신성한 예술의 뮤즈와도 같았다.
로댕과 까미유 두 사람은 서로의 재능을 존경하면서 지독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뮤즈의 날개를 얻은 로댕은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두 사람은 함께 타오르고, 함께 손을 맞추어 일하면서 눈부신 역작들을 쏟아 냈다.
로댕은 1885년부터 10년 가까이 까미유가 작업조수로 도움을 주는 동안
일생을 통틀어서 가장 왕성하게 작업의 열정을 과시하게 되었다.
필생의 역작 지옥문의 중요한 구상들도 이때 모두 쏟아져 나왔다.
[중년]
점토를 주물러서 또 한 명의 로댕을 빚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댕은 착한 반려자 로즈와 사랑스러운 연인 까미유 사이에서 방황한다.
로즈는 뜨락의 노란색 해바라기처럼 넉넉하고, 까미유는 연못가의 보라색 수선화처럼 수줍다.
로즈는 가을녘 대지의 품처럼 아름답고, 까미유는 늦봄 게으른 햇살처럼 달콤하다.
로댕은 로즈와 까미유 사이를 오가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 갈래로 찢어진 제 모습에서 천국과 지옥의 그림자를 보았다.
로댕은 예술과 삶의 가치를 배회하는 영혼의 헛된 방황이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애원하는 여인]
사랑하는 연인을 앞에 두고 울부짖으며 매달릴 수밖에 없는 여인의 슬픔
까미유는 로즈와의 관계 속에서 로댕에게 눈물로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로댕과 까미유는 결국 헤어지고 만다.
로댕의 여성편력증과 불성실한 태도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결별을 선언한다.
그녀는 사랑의 배신감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으며
극도의 우울증과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 편집광적 증상을 보이며 거리를 방황하게 된다.
로댕과 멀어진 까미유는 무력감과 광기에 시달렸으며, 로댕도 그녀를 잃고 난 뒤,
여전히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예술은 서서히 활력을 잃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몸을 빼려 한다.
사랑으로부터, 세상의 비웃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폴, 일찍이 너를 따라 중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 너무 깊었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폴, 나를 재촉하는 인어의 금빛 플루트 소리 들리는가.
저 황홀한 빛,
꿈 하나를 깨는 데 일생이 걸렸구나.
지지 않는 햇살 같은 바다의 쪽빛 명성을 위해서
나는 죽어서도 더 불행해야 한다.
로즈는 내 삶의 터전이오 그..녀..를..외..면..할.. 수..는..
로댕의 목소리는 나를 할퀴며 자라는 겁없는 손톱이었다.
밤마다 깨어지며 덮치는 조각상들,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작업실 거미들은 탄성 좋은 타액으로 나를 엮었다.
그의 등을 향한 날들의 혼미한 정신
찢긴 팔다리 타고 올라 나의 뇌수를 뽑아내던 잔혹한 그리움의 대롱
맨발의 거리를 헤매도 바다는 끝내 내 발바닥 적셔주지 않았다.
아, 일몰에 젖은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찢어발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폴 네가 맞은편에 서 있기도 했던가.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사랑하는 폴
파도 위 바람처럼 가벼워지는구나.
너무 무거웠던 짐,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지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사랑, 이제서야
고모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 있었다,
라고 말할 조카들의 병아리 같은 입
훗날이 미안할 뿐이다.
1913년 7월, 그 후
가족에게 사랑하는 연인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그녀는 정신 병원에 갇혀서 지내게 된다.
1943년 그녀는 79세의 나이로 쓸쓸한 생을 마친다.
30년이란 긴 세월, 그녀에게 그것은 지옥에서 보낸 기나긴 악몽의 세월이었다.
단지 조각을 사랑했고,
조각을 사랑한 남자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녀가 짊어진 삶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무게였음을...
까미유 끌로델...
그녀는 치열한 예술혼과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가진 뛰어난 조각가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연약한 한 여인에 불과했다.
그녀는 로댕을 자신의 재능과 열성을 이해하는 동지이자 스승으로,
로댕은 그녀를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구원의 여인으로,
자신의 비법을 전할 수 있는 여인으로 곁에 두었더라면,
사랑과 집착이 빚어낸 애증의 관계가 아니라 불타오르는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적 동반자로 남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대가 소중한 것은
아직도 그대를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그대를 그리워하며 보내야만 했던
자해적인 그 숱한 시간들이
나에겐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리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내 생애 단 한 번 허용되는 사랑이라면
주저 없이 그대를 택하겠노라.
우리가 꿈꾸는 사랑의 신화가
나를 짓밟고 무참히 끝나버릴지라도
끝내 나는 그대를 사랑이라 부르리라.
그리움으로 허덕이는 고독한 내 창틀에서
그대,
무엇을 바라는가, 무엇을 꿈 꾸는가.
그대를 향한 긴 날의 그리움
환한 대낮에 비추이는 햇살에 가려진
깊고 깊은 어둠의 긴 터널
끝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해도
그대를 찾는 부산한 내 발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움의 파도를 헤치며
홀로 흐르는 내 사랑의 물줄기는
피투성이 몰골로 외로이 걸어가는
고독한 섬이어라.
그대 때문에 아프고
그대 때문에 외롭고
그대 때문에 흔들리고
그대 때문에 힘겨워도
이 모든 것 먼지보다 더 가벼운 것이리니...
그대여...
이별이라 말하지 말라.
지우고 지워도 또다시 샘솟는 사랑
비우고 비워도 또다시 채워지는 사랑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라.
아직도 오열하는 그리움
그대 손 마주 잡으면 희망인 것을...
그대여...
슬픔이라 말하지 말라.
아직은 눈물이라 말하지 말라.
그대는 나의 기쁨이며 반짝이는 보석인 것을...
그대는 나의 축복이며 황홀한 미래인 것을...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오직 나의 자유이고
그 자유가 그대 살내음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오랜 그리움과 고독과 깊은 슬픔
저 홀로 춤추고 노래하며
마침내 사랑으로 부활하리라.
이 모든 것
내 사랑, 그대를 찾아가는
나의 고독한 여정인 것을...
그대여...
아직도 그대를 사랑이라 부름을
진실로 용서해다오.
글/러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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