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여, 청산이 좋다 말하지 마오.
좋다면서 왜 산을 나오는가.
저 뒷날 내 종적을 시험삼아 보게.
한번 들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
무더운 여름...
사는 게 치솟는 수은주만큼이나 후텁지근합니다.
송림 사이로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
세상의 근심·걱정 모두 내려놓고 신선이 되어보지 않을래요.
고운 최치원이 무릉도원을 꿈꾸며 식솔을 데리고 들어와 살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홍류동 계곡에서 은은한 솔향 실은 세찬 물소리를 벗 삼아
시리도록 차가운 계곡에 발이라도 담그며 유유자적한다면,
사는 게 이보다 더 시원할 수는 없겠지요.
경남 합천의 홍류동 계곡은 가야산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해인사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10리 길에 달하는 계곡입니다.
해인사 앞을 지나 가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홍류동 계곡을 따라 이어져
산행을 즐기며 계곡의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좋은 곳입니다.
홍류동은 단풍이 워낙 붉어 계곡물까지 붉게 보인다고 해서 홍류동이라 불리었는데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여 주변의 천년 노송과 함께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첩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사람의 소리는 지척 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모두 귀먹게 했구나.(입산시)
[농산정]
시대를 앞서간 천재 고운 최치원을 보듬어 안은 가야산은 최치원이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신라 말 어지러웠던 세상을 비관하며 이곳으로 들어와 홍류동 물소리에 세상 시름을 잊고
바둑과 차를 벗하며 살다가 홍류동 계곡에 갓과 신발만을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춰버렸답니다.
신라말의 정치적 혼란과 뿌리 깊은 신분제의 차별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시대의 불운아에게 방랑의 종착지이자 쉼이 되었던 가야산 일대에는 곳곳에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농산정. 홍류동
계곡의 빼어난 절경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가야산홍류동고운제시석처 비석]
홍류동의 농산정 동쪽 계천 중 암반에 그가 입산할 때 지은 입산시가 새겨져 있는데
돌의 마멸이 심해서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암 송시열이 농산정 맞은 편 문창후유허비 북쪽 해인사로 올라가는 오른쪽 암반에
자필로 이 시를 새겨두었는데, 대부분의 인사들이 고운의 것으로 잘 못 알고 있으므로
본 위치를 찾아 후인들의 착견을 없애고자 이 비를 세워둔다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