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내리자 후끈 달아오른 습한 열기가 내 숨통을 막았다.
숨쉬기가 괴로울 정도로 악취가 풍겼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인도인들을 보니 또 맨붕이 왔다.
내 몸은 배낭 무게를 더하여 천근만근 무거웠다.
바라나시 정션역(Varanasi Junction Railway Station)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바라나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녀야 한다.
여행자들 등쳐먹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내리자 역시나 '헬로!' 하면서 호객꾼들이 하나둘씩 들러붙기 시작했다.
완전히 무시하고 눈길도 한 번 안 주고 걸어가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게 그들의 습성이다.
우리를 따라오는 삐끼들을 무시한 채 프리페이드 오토릭샤 부스로 갔다.
그래도 몇 사람은 줄기차게 말을 건네며 우리를 따라왔다.
프리페이드 부스 앞에 도착하니 주변에 있던 여러 명의 릭샤왈라들이 몰려들었다.
표를 끊으려는 우리를 보고 그들이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그중 한 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알카호텔로 간다고 했더니, 알카 호텔은 문 닫았다고 했다.
하하.. 호텔 문 닫았다고 하는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그 말에 속아 넘어갈 우리가 아니었다.
웃으면서 내 친구가 지금 알카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했더니, 그는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렸다.
기차역에서 호텔로 가려면 고돌리아까지 릭샤를 타고 또 거기서 호텔까지는 걸어 들어가야 한다.
호텔이 갠지스 강 다샤스와메드 가트 근처에 있어서 그곳까지는 릭샤가 들어갈 수가 없다.
프리페이드 부스에서 고돌리아까지 90루피와 수수료 5루피를 주고 표를 끊었다.
우리는 프리페이드 부스에서 지정해주는 릭샤가 가격 면에서는 비싸지만 그래도 안전하다고 믿고 탔다.
바라나시는 콜카타보다 더 지저분하고 더 시끄럽고 도로가 상상 그 이상으로 혼잡했다.
바라나시 오후 나절은 숨이 막힐 정도로 태양 빛이 대지를 달구고 있었다.
좁은 도로에 사이클 릭샤와 오토릭샤, 택시와 오토바이가 엉켜서 서로 먼저 가려고 야단들이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거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저마다 빨리 가겠다고 빵빵 울려대는 크략션 소리,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매연으로 오염된 공기를 마실까 봐 마스크로 입을 가렸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내 목구멍은 점점 더 따끔거리고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오만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나는 과연 바라나시를 무사히 여행할 수 있을까?
태국 방콕은 교통체증이 매우 심각한 도시다.
그러나 태국 사람들은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빵빵거리며 크락션을 울려대지 않는다.
이유는 태국 사람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성격이 때문일 것이다.
인도사람들은 그리 급한 성격도 아닌 것 같은데, 도로에만 나오면 저렇게 야단들일까?
그들이 울려대는 크락션 소리는 성미가 급해서가 아니라 '당신 뒤에 내가 있다'라는 방어의 표시란다.
그들은 백미러를 보는 것보다는 크락션 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운전하기 때문에 백미러가 없는 차들도 많다.
백미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있어도 아예 접고 운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타는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하다.
그들이 경적을 울리는 건 무질서와 도덕관념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하니 이것 또한 문화 차이인 것 같다.
<Horn, Please>, <Go to Side>라는 문구는 <나를 앞질러 가고 싶거든 크락션을 울려주세요.>라는 뜻이란다.
우리를 태운 오토릭샤는 한참을 달려가더니 여기가 고돌리아라고 내리라고 했다.
초행길이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고돌리아가 아닌 것 같았다.
여기가 아니라고 더 가자고 했더니, 그는 여기가 고돌리아 맞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단연코 여기가 아니라고 꿈쩍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더니,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비싼 돈 주고 프리페이드 릭샤를 탔건만 릭샤왈라의 횡포는 여전했다.
그는 또 조금 가더니 여기가 고돌리아라고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고돌리아가 아니라고 더 가자고 했다.
그는 정말 여기가 맞다고, 조금만 더 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가 고돌리아라고 했다.
어차피 길도 막혀서 움직이지 못하니 있으니 그냥 걸어가는 게 훨씬 빠르다고 했다.
여기서 5분만 더 걸어가면 되니까 우리를 내려주고 자기를 뉴턴 해서 돌아가야한다고 했다.
도로는 양방향으로 모두 정체되어 온갖 탈것들이 뿜어대는 매연과 경적 소리로 아비규환이었다.
저렇게 맞다고 난리를 치니 믿어야지 하면서 내려서 사거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인도도 제대로 안 갖추어져 있는 길을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걷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온갖 탈 것들과 사람들을 피해가면서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 사거리까지 겨우 걸어갔다.
그곳은 고돌리아가 아니었다. 고돌리아 한 블록 전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 앞이었다.
아뿔싸 당했구나 싶었지만, 이미 릭샤왈라는 떠나간 뒤였다.
바라나시에 오면 꼭 이렇게 당한다고들 하더니, 나 역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난생처음 오는 바라나시의 고돌리아가 어딘 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그나마 처음에 고돌리아라고 내리라고 할 때 안 내리고 버틴 것만 해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눈 뜨고 코 베가는 인도. 하하..
꼼짝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돌리아까지 한 블록을 걸어가야만 했다.
고돌리아에서 호텔까지는 또 걸어서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카오스 상태의 도로를 뚫고 걸어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인도도 없는 거리를 온갖 탈것들을 피해 가면서 걷는 길은 고행길이었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배낭을 메고 더위와 싸우면서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데
오토 릭샤 왈라와 사이클 릭샤 왈라가 또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가느냐고 해서 알카 호텔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알카 호텔을 잘 안다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고도리아는 코 앞이라 탈 필요가 없고, 호텔까지는 길이 좁아서 릭샤가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했더니
호텔까지 사이클 릭샤는 들어갈 수 있다고, 50루피만 주면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한가한 아침 시간에는 사이클 릭샤가 들어가기도 한다지만, 지금 시각에 정말 들어갈 수 있을까.
더운 날씨에 배낭까지 메고 걷는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에,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사이클 릭샤는 비좁은 의자에 우리와 배낭을 싣고 뒤뚱거리며 힘겹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태우고 조금 가더니 골목길을 가리키며 여기가 알카 호텔이라고 내리라고 했다.
이런 도둑놈 내가 알카 호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데, 어디 속이려고 드나.
여기가 아니라고 더 가자고 했다.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씩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갔다.
또 조금 가다가 여기라고 내리라고 했다. 알카 호텔로 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또 여기라고 거짓말을 했다.
여기 아니라고 내릴 수 없다고 했더니, 여기가 알카호텔 맞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정말 피곤한 일이다. 인도 여행할 때 제일 짜증 나는 일이 이런 경우다.
그들은 우리를 속이려고 하고, 우리는 그들을 하염없이 의심 해야 하고, 끝도 없는 싸움에 진이 다 빠져버린다.
내리라면 여기서 내리기는 하는데 우리는 돈을 못 주겠다고 했다.
여기는 알카호텔이 아니므로 돈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다른 사람한테 알카호텔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기가 찬다. 처음부터 호텔도 모르면서 우리를 속이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
길을 묻고는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그는 조금 가다가 여기라고 내리라고 하고, 우리는 아니라고 우기고, 이런 실랑이를 반복하면서
사이클 릭샤는 갠지스 강가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좁은 골목길에 소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소를 보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가는 길이 좁아서 릭샤를 타고 가는 게 걸어가는 것보다 더 불편했지만
무거운 배낭이 있어 걷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그냥 릭샤에 앉아있었다.
급기야 남편은 불편한지 릭샤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약간 경사진 길에서는 뒤에서 릭샤를 밀기도 했다.
나는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모르는 척 그냥 타고 있었다.
릭샤왈라는 나와 배낭 2개를 싣고 앞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남편은 뒤에서 릭샤를 밀면서
가트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릭샤왈라는 호텔 가는 길을 몰라서 가면서도 계속 물었다.
드디어 알카 호텔 이정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보고는 나도 내렸다.
이정표가 있으니 조금만 가면 호텔이 나올 것 같았다.
우리를 태우고 온 릭샤왈라다.
50루피를 주었더니 그는 미안한 듯 수줍게 싱긋이 웃었다.
어쨌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이정표를 따라 호텔을 찾아갔다.
좁은 골목길에 소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소는 온순해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아무 위협도 하지 않았다.
소를 보면 당황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옆으로 피해 가면 된다.
소가 달려들어도 인도 사람들은 신께서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소를 신성시하고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들만의 신화고 문화일 것이다.
갠지스 강 가트로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작은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오가는 사람들로 정말 많았다.
골목길에서 사람만큼이나 소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도에서 소의 존재는 바로 신이다. 인도에서 소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
인도인들은 소를 아주 신성하게 여긴다. 그래서 아무 데나 돌아다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소는 대부분 힌두교 사원에서 키우는 소라고 한다.
개인 소는 힌두사원의 소와 구별을 하기 위해 뿔에 자기만의 색을 칠한다고 한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들 게 찾아간 알카호텔...
나의 모든 여정을 다 아는 듯 갠지스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알카호텔은 아주 오래된 후진 호텔이다.
호텔이 럭셔리해서 예약한 것은 아니고, 단지 호텔에서 갠지스 강을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서 예약한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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