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프 놈 펜

[캄보디아/프놈펜] 캄보디아의 고문 박물관, 뚜얼슬렝 박물관(Toul Sleng Museum)

러브송. 2013. 8. 18. 14:40

 

 

 

뚜얼슬렝 박물관은 크메르루주가 고문과 학살을 강행했던 장소이다.
이곳은 원래 뚜얼슬렝 쁘레아(Toul Sleng Prey)라는 평범한 여자고등학교였다. 

크메르루주가 집권하면서 담에는 철조망이 올려지고 교실은 고문실이나 감옥으로 개조되었다.
뚜얼슬렝 쁘레아(Toul Sleng Prey)의 원래 의미는 '행복한 나무'를 뜻한다.

원래의 고운 이름과는 전혀 다른 비극의 현장이 되어버린 뚜얼슬렝,

크메르루주는 여학교를 제21 보안대 본부(S-21)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했다.

전 정권의 관리를 심문, 고문, 숙청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곳으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끔찍하게 학살당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손이 너무 부드럽다는 이유로 혹은 안경을 썼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상상키 어려운 고통을 당하였다. 남녀노소 구분도 없었고 나이도 상관없었다.

70세 노인을 비롯해 초등학생까지도 이곳에 수용되었다가 킬링필드에서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크메르루주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1978년 5월 27일 하루 동안에만 582명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 박물관은 킬링필드의 만행을 소름 끼치게 증언하는 세계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것을 만든 것은 1979년 프놈펜을 침공 함락시킨 베트남이었다.

침공의 이유를 캄보디아 내부 문제로 미루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건물 내부에는 감옥과 신문하던 모습,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흑백사진이 가득 걸려있다.

이 모든 일은 폴포트 집권 시절 3년 8개월이란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곳에 갇혔던 사람들은 결국 높다란 담벼락을 넘지 못하고 죽어갔다.

 

 

(폴포트 사진)

 

폴포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이 나라 인구의 반을 죽여야 한다고 떠들었단다.

'평등주의 이상향'을 건설하겠다는 허황한 꿈을 꾸던 폴 포트는

뼛속까지 공산주의자가 되어 집권한 후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짧은 기간에(3년 8개월)

이토록 엄청나게 자국민을 살육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 일을 실천했을까.  
폴 포트란 사람은 과연 어떤 인간이었을까?

 

 

 

[뚜얼슬렝 박물관 외부와 내부 모습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서니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이 나란히 안치된 흰색의 묘였다. 

낡은 건물에서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이곳을 찾은 이들의 표정에서 암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곳을 발견할 당시 흩어져 있던 시신을 모아 묻어준 묘라고 한다.

먼저 향을 피우고 묵념을 드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학생의 재잘거림으로 채워졌던 정겨운 교정이 끔찍한 비극의 장소가 되어버렸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당시에 감옥과 고문실로 사용했던 세 개의 학교건물을 개방하고 있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감옥과 고문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철조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17,000명 이상이 이곳을 거쳐나갔으며, 불과 6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무고한 사람들이 수용되었던 교실이다.

낡은 철제 침대 위에 수용자의 발목을 묶고 족쇄를 채우고 고문을 했다.

변기로 사용된 탄약통도 보인다.

 

 

 

 

크메르루주가 떠나고 난 뒤 방치되어 있던 시신들 모습이 사진으로 교실 벽에 걸려있다.

 

 

 

 

바닥엔 그들이 흘린 핏자국이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다.

 

 

 

 

감옥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감방으로 보내지기 전에 사진을 찍고 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죽음을 예감한 이들의 얼굴은 모두 어둡게 굳어있다.

 

 

 

 

 

 

수감자들이 입었던 옷가지들도 모아 전시해놓았다.

 

 

 

 

고문당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모습, 자포자기한 모습, 고문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모습 등등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모습들이어서 차마 사진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겁에 잔뜩 질린 눈망울, 이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크메르루주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른 아이 모두 감옥에 가두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무표정한 엄마의 모습이 가슴 아프다.

이 여인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크메르루주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

 

 

 

 

 

수감자들이 당시에 발에 차고 있었던 족쇄 모습이다.

모든 죄수는 발에 쇠고랑을 차고 긴 쇠막대로 서로가 연결되어 이곳에서 생활했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으로 독방으로 사용한 감옥이다.

 

 

 

 

독방에서 생활하는 수감자의 모습도 그림으로 남겨두었다.

 

 

 

 

 

총알도 아까워서 다양한 고문 도구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아이를 뺏어가는 장면,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격은 온데간데없고 사람을 마치 개, 돼지처럼 취급했다.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

 

 

 

 

잔인했던 갖가지 고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공포에 떨고 있는 수감자들의 얼굴이 가슴에 새겨져 한동안 몹시 우울했다.

다시는 내가 사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드린다.

 

 

42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