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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프놈펜] 캄보디아 아픈 역사의 현장,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

러브송. 2013. 8. 15. 00:31

 

 

'킬링필드'라는 영화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곳, 킬링필드... 

툭툭을 타고 잔인한 역사의 현장인 킬링필드를 찾아갔다.

킬링필드는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날따라 가는 길이 얼마나 많이 막히던지 15km를 45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비극의 현장이었던 킬링필드 주변은 우리나라의 7, 80년대 모습과 비슷했다.

잔인한 학살이 자행되었던 킬링필드 주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저 아이들은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를 알기나 하는 걸까?


 

 

 

킬링필드 입구에 다다랐다.

킬링필드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 사이에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라는 무장단체가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던 장소 가운데 프놈펜과 가장 가까운 쯔응 아익(Cheoung Ek)을 일컫는다.

뚜얼 슬랭(Toul Sleng) 감옥에 수용되었던 정치범을 비롯해 당시에 처형 학살되었던 사람은 무려 2백만 명이나 된다.

전체인구가 8백만이었는데 2백만 명이나 죽었으니 어마어마한 수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이곳에 집단 매장되었던 8,900여 명의 시신은 1980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우리를 반기는 화사한 꽃과는 달리 회색빛 하늘엔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팜플랫도 받았다. 오디오 투어는 5달러, 입장료만은 2달러였다.

오디오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2달러 입장권을 주는데, 말하지 않으면 무조건 5달러 입장권을 끊어준다.

한국어 팜플랫도 있고, 한국어 오디오 투어링도 가능하니 선택은 자유다.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루주는 마오이즘(모택동주의)을 신봉하던 급진적인 공산당 집단으로

부패한 론놀 정권에 대항하였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길 꺼렸던 미국은 론놀 정권을 지원했지만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는 게릴라전을 수행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폴포트는 친미 론놀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되었다.

폴포트 정권은 종교, 사유재산, 화폐 등을 모두 폐지 시켰다.

폴포트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은 무차별하게 학살시켰으며 수백 명의 지식인들도 죽였다.

당시 폴포트가 꿈꿨던 것은 최대의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수도인 프놈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농촌 지역으로 강제이주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반항할 시에는 즉각 처형시켰다.

기존 정권이나 군에 종사한 사람은 가족까지 멸하였고, 의사나 교사처럼 학문을 익힌 사람들도 처형하였다.

어떤 이는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손이 곱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들을 이유 없이 모조리 죽였다.

당시 800만 명의 국민 중 200만이 학살당했는데, 그 결과 현재 인구 중 노인층이 별로 없다고 한다.

 

 

 

 

거대한 유골탑이 눈앞에 펼쳐져서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크메르루주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이들의 유해가 발견된 그 자리에 위령탑을 세우고 그들의 원혼을 달래주었다.

 

 

 

 

위령탑 외벽 기둥에 이렇게 쓰여 있다.

"Would you please kindly show your respect to many million people who were killed under the genocidal Pol.Pot regime"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감히 누가 위로할 수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이곳에 잠든 영혼들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경건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개 숙여 묵념을 드렸다.

 

 

 

 

위령탑 안에는 화장한 유골들을 나이별로 쌓아 놓았다.

유리 안에 가득 쌓여있는 해골들을 보니 영화로만 느꼈던 공포감이 피부로 와 닿았다.

 

 

 

 

탑의 꼭대기까지 빼곡히 차있는 희생자의 유골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같은 민족끼리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니 정말 말이 안 나온다.

세상에서 인간이 제일 잔인하고 무섭다고 하더니 실감이 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참혹한 현장에서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크메르 루주군의 대학살로 수만 구의 시신이 버려진 곳,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잔인하게 학살당했던 현장이다.
총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쇠막대기, 팜 나무줄기 등으로 죽였다고 하니 그 잔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잔인했던 대학살의 터만 남아있는 킬링필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설명을 들으면서 학살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대학살의 현장이 발견되는 것을 두려워한 크메르루주는 수용시설 대부분을 파괴하고

남아있는 수감자들도 거의 생매장했다고 한다.

 

 

 

 

450명의 희생자가 발견된 집단 매장지다. 이곳에서는 450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아무 죄도 없이 살해된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색색의 팔찌를 나무 기둥에 걸어두었다.

 

 

 

 

발견 당시 현장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시신이나 뼈가 발견된 곳에는 설명과 함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의 뼈와 이빨 조각이 발견된 곳으로 홍수가 나거나 비가 많이 오면 지금도 보인다고 한다.

 

 

 

 

발견 당시 입고 있었던 옷가지들을 모아놓았다.

 

 

 

 

킬링트리, 아이들을 죽이는 데 사용했던 나무다. 이곳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희생된 곳이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머리를 나무에 처박아서 죽이거나

아이의 다리를 잡고 머리를 나무에 내동댕이쳐서 죽였다고 한다.
얼마나 잔인한 광경인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

 

 

 

 

나무는 당시의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어린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나무 곳곳에 여러 가지 빛깔의 팔찌를 걸어두었다.

부디 좋은 세상에 가서 영면하라고....

 

 

 

 

킬링트리 옆에 집단매장지가 있다.
이곳에서 100명 이상의 어린이들과 여자들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은 옷이 벗겨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곳은 머리가 잘려나가고 없는 166명의 희생자가 집단으로 발견된 곳이다.

 

 

 

 

1980년 발굴 당시 발견된 희생자들의 뼛조각을 유리 상자에 모아 놓았다.

 

 

 

 

유리 상자 옆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작은 사당이 있다.

이곳 역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여러 가지 빛깔의 팔찌가 놓여 있다.

 

 

 

 

 

희생자들의 무덤을 밟고 지나가지 말아 달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킬링필드에서 가장 큰 나무다.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 고목에도 기막힌 사연이 있다.

 

 

 

 

표지판에 마법 나무(Magic Tree)라고 씌여 있다.

그 당시 죽어가는 사람의 비명이 다른 수용자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음악을 크게 틀었는데

바로 이 나무에 대형 스피커가 달아놓았다고 한다.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묻히게 하기 위해 확성기까지 달아놓고 음악까지 틀었던

크메르루주군의 잔인함에 다시 한 번 더 놀랄 따름이다.

 

 

 

 

아름다운 공원처럼 보이는 이곳이 대학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움푹 패인 웅덩이 같은 곳도 매장된 시체들이 발견된 장소다.

 

 

 

 

박물관에는 킬링필드와 관련된 물품과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죽음의 현장)는 비단 이곳만이 아니라 캄보디아 전국에 걸쳐 발견되었다.

캄보디아가 과거 얼마나 큰 강대국이었는지 찬란한 앙코르 유적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캄보디아는 원래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 6.25 전쟁 직후엔 우리나라에 쌀을 보내주기도 했던 나라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가난에 허덕이는 캄보디아가 하루빨리 슬픈 역사를 벗고 다시 태어나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던 크메르의 영광을 다시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두 번 다시는 내가 사는 이 땅에 잔인한 대학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킬링필드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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