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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보길도] 윤선도가 차를 마시며 책을 보았다는 한 칸짜리 방 동천석실

러브송. 2012. 5. 12. 15:50

 

 

     보길도는 섬 곳곳에 고산 윤선도가 남긴 문학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다.

     고산 윤선도가 풍류를 즐겼던 세연정을 뒤로하고 윤선도가 차를 마시며 책을 보았다고 전해지는

     한 칸짜리 작은 정자 동천석실(洞天石室)로 찾아 길을 나섰다.

 

 

 

      동천석실로 가는 길 역시 걷기에 편안한 나무 데크로 만들어져 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로 가는 부황리 길은 오래된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다.

     13년 동안 보길도에 머물렀던 고산, 동백꽃 길을 따라 걸으며 윤선도의 생애를 떠올려본다.

 

 

 

 

     윤선도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마치 호위라도 하듯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발걸음이 즐겁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푸른 잎사귀, 그 사이사이로 붉은 꽃송이들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붉고 작은 꽃송이가 바람이 떨어져 예쁜 꽃길을 이루고 있다.

 

 

 

 

     보길도의 4월은 온통 빨간 동백꽃 세상이다.

 

 

 

 

     5월이지만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빨간 동백꽃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세찬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동백꽃,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지만, 동백꽃 길을 걷는 발걸음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윤선도 생태 체험공원도 있다.

 

 

 

 

        마늘밭을 배경으로 한 작은 마을 뒤로 큰 산이 보인다.

      보길도엔 섬치고는 제법 높은 산이 많은 것 같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바람 따라 푸른 물결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다.

     나도 덩달아 덩실덩실 춤을 춘다.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이정표가 반갑다.

     고산은 51세 때부터 13년 동안 보길도에 머물렀다.

     윤선도는 낙서재를 비롯한 보길도에 은거하며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걸작을 남겼다.
     낙서재에서 8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둘 때까지 세연정, 동천석실, 곡수당, 무민당, 정성암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지으며 자신만의 무릉도원을 꿈꾸었다.

 

 

 

 

     세찬 바람에 동백나무가 몸부림치고 있다.

     예쁜 동백꽃이 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심술스런 바람이 그저 밉기만 하다.

 

 

 

 

       동천석실로 가는 길이다.

 

 

 

 

      전망대처럼 탁 트인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 조그마한 정자가 보인다.

      바로 윤선도가 산 중턱에 지었다는 동천석실이다.

 

 

 

 

      동천석실은 한 칸짜리 작은 정자다.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 말 그대로 한 칸짜리 집이다.

      한양을 떠나 보길도에 정착한 윤선도는 동천석실을 짓고 차와 책을 가까이했다고 한다. 

      윤선도는 동천석실을 가리켜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일컬었다.

 

 

 

 

      정자에 올라서면 낙서재와 적자봉을 비롯한 부용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산기슭에 정자를 세우고 시를 읽고 노래를 불렀던 선비,

     그 시절에도 이곳에 오르면 바다처럼 부용동이 한눈에 펼쳐졌으리라.

     이곳에 올라 수백 년 전 윤선도와 마음을 통하고 같은 풍광을 즐기는 기쁨을 누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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