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남해대교를 건너면 바로 노량진 앞바다에 닿습니다.
이 바다에 파도가 심하게 일면 그 물결이 마치 이슬방울을 뭉쳐 만든 다리처럼
보인다 해서 이슬 露에 다리 梁을 써서 노량이라고 부릅니다.
이순시 장군은 바로 이 노량 앞바다 위의 급류와 지리적 여건을 이용해서
임진왜란 최후의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노량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관음포가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이락포 또는 이락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곳이라는 지명이 더 유명한 것은
아마도 그 분을 기리는 마음이 만들어낸 지명일 것입니다.
관음표 가는 길에 어귀에는
"지금은 전투가 한창이니 내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라"라는
글귀가 큰 비석에 적혀있습니다. 선조 31년 (1598) 11월 19일 새벽,
이순신 장군이 적탄에 맞아 숨지기 전에 남긴 말씀입니다.
이 글귀를 보면 장군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가와 다시금 숙연해집니다.
비석 뒤로는 이락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먼저
육지에 안치된 곳입니다. 그 후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를 거쳐 1599년
지금의 충남 아산에 모셔졌고, 관음포는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충무공이 순국한 지 234년이 1832년, 이순신의 8대손인 통제사 이향권이
충무공의 진충보국의 뜻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웠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떨어진 곳이라는 뜻의 '이락사'는 명칭을 두고 논란이 많답니다.
의미가 좋지 않으니 관음사로 고쳐 쓰자는 주장도 있지만 수백 년이 흘렀고
국가에서 정한 명칭이니 그대로 쓰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답니다.
이락사 오른편으로 돌아 바다쪽으로 향하면 곧은 대나무와 짙푸른 동백숲이 나옵니다.
이어 솔향 그윽한 솔밭길이 펼쳐지고 그 길을 따라 바다 앞에 이르면
첨망대라는 누각이 지어져 있습니다.
첨망대는 이충무공이 순국한 지점을 바라보면서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남해군에서 1990년에 2층 건물로 건립하였습니다.
노량해전은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왜병과 대결한 마지막 해전이며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서 벌어진 최후의 대규모 해전입니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승리와 함께 전사하셨습니다.
첨망대에서 바라본 노량 앞바다
노량 앞바다에 집결하여 도망치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던 왜적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눈앞에 둔 이순신 장군은 54세의 일기로 장렬히 전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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