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 미대륙횡단/38일 미대륙횡단

78.미국 대륙횡단 38일(여행 31일:시카고→피오리아)

러브송. 2004. 10. 1. 01:20

[미대륙횡단 여행 31일 : 2003.7.27]
 

       ★ 시카고 → 피오리아 : 180 마일(약 270km)
       ★ 가는 길 : 294 SOUTH → 55 SOUTH  
       ★ 숙소 : 오빠네 집
오늘은 여행 31일째 되는 날... 드디어 집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도 버티는군요. ㅎ~ 약골 체질인 저도 씩씩하게 군말 없이 잘도 버팁니다. 왜냐구요?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절대로 안되지요. 하루라도 펑크나면 예약한 호텔들이 줄줄이 펑크납니다. 이미 선불로 낸 숙박료도 모두 공중에 붕 뜨는 거지요. 또 미국 병원비는 얼마나 비싸다고요. 아파도 한국에 가서 아파야지요. 오늘은 친정 오빠네로 가는 날... 친정 엄마집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아침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드디어 출발~~!! 배가 하나도 안 고픕니다. 친정에 가는데 배가 고플 리 있겠어요.ㅎ~ 오빠네가 사는 피오리아는 시카고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피오리아는 병원 도시입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의사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에 건너가서 제일 안정되게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의사라나요. 이민간 사람들 2세는 대부분 의사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 집 장남인 오빠는 저보다 3살 위, 언제나 저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풍부한 유머에 명석한 두뇌,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ㅋ~ 남편보다 오빠를 더 좋아한다고 울 남편 늘 질투를 합니다. 오빠와 남편은 학교 선후배 사이거든요. 그래서 늘 꼼짝을 못한답니다. 드디어 오빠네 집에 도착... 넓게 펼쳐진 파란 잔디가 우리를 반겼습니다. 골프장을 끼고 있는 오빠네 집는 정말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이었습니다.
골프 하면 한국 사람들 사족을 못 쓰지요. 정작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골프를 치지 않아요. 오빠만 해도 바로 코앞이 골프장이지만, 골프는 잘 하지 않는답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해외골프 수요가 늘어나서 연간 30여만 명이 해외골프 관광에 나선답니다. 그래서 연간 1조 원 이상의 외화가 유출되고 있다고요. 해외골프 인구를 국내로 흡수하기 위해 앞으로 골프장 건설 규제를 완화한다는데 골프장이 늘어나면 우리야 좋지만 역시 환경 훼손 문제가 제일 큰 해결과제겠지요.
위의 사진은 도라지꽃입니다. 참 예쁘지요. 소박한 아름다움이 풍기는 도라지꽃... 작년에 친정 어머니께서 다녀가시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꽃씨를 심어주셨답니다. 꽃씨는 어느새 싹이 나고 이렇게 예쁘게 꽃을 피웠다네요. 엄마를 본 듯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댑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오빠와 새언니, 개구쟁이 조카 녀석... 한 달 동안 떠돌이 생활에 오랜만에 평온함이 찾아듭니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도라지라고 하는 소녀가 먼 친척 오빠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빠는 공부를 하기 위해 먼 나라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소녀는 의지할 곳이 없어 전부터 잘 아는 절의 스님에게 맡겨졌습니다. 집을 떠나던 날 오빠는 소녀에게 열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하였습니다. “얘, 도라지야. 내가 l0년만 공부하고 돌아올 것이니 너도 스님 밑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올 때를 기다려라.” 이렇게 약속을 하고 떠났던 오빠는 l0년이 지나도 좀처럼 올 줄을 몰랐습니다. 소녀는 매일 오빠를 기다렸습니다. 뒷산에 올라가 먼 바다를 바라보며 오빠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습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오빠는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빠져 죽었다느니, 중국에서 결혼을 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느니 하는 구구한 이야기들 뿐이었습니다. 소녀는 마침내 오빠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혼자 지내기로 결심하고 절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소녀는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느 날 문득 오빠가 떠났던 옛날 바다가 보고 싶어져서 오빠를 기다리던 뒷산으로 올라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오빠! 지금이라도 돌아오셔요. 오빠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그리움에 북받쳐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도라지야.”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할머니는 그만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답니다. 그 후 할머니가 숨을 거둔 자리에서 한송이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꽃을 도라지꽃이라 불렀답니다.
오빠와 언니가 마련해준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매일 변변한 한식 한번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맛깔스런 한식으로 잘 차려진 식탁을 보니 정말 행복합니다. 오빠가 손수 구워준 스테이크도 일품 요리... 미국에서는 남녀 가사 분담이 기본이지요. 그동안 오빠 요리 솜씨도 많이 늘었답니다. 김치도 먹어보고, 된장찌개도 먹어보고 오랜만에 포식을 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듯이 역시 한국사람은 한식을 먹어야한다니까요.
개구쟁이 조카 녀석입니다. 누나가 한 명 있고, 이 녀석은 늦둥이지요. 누나보다도 한국말을 더 잘 합니다. 어릴 때 오빠처럼 역시 개구쟁이랍니다. 여행일정이 빡빡해서 오빠네 집에서 하루만 묵게 되었는데 조카 녀석 우리를 보고 "Stupid" 하다고 말하더군요. 겨우 하룻밤 자고 가려고 한 달이나 결려서 이 먼길을 오다니 참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요...ㅋㅋㅋ 어린 마음에 하루만 자고 가는 우리가 무척이나 야속했던 모양입니다.
Bradley University... 오빠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입니다. 한국 학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미국 학생이랍니다. Bradley라는 사람이 학교를 설립해서 그 이름을 따서 Bradley University라고 불린다는군요.
오빠는 제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결혼해서 도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대한의 남아답게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미국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것도 영어로요. ㅎㅎㅎ... 오빠가 미국에 산지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멀고 먼 길이 영어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 자기네들끼리 킬킬거리며 주고 받는 죠크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요. 문화와 정서가 다른 나라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멀고도 어려운 일이라 나요.
오빠의 꿈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대로 요즘은 세미나다 학회다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더군요.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사는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오빠입니다. 그래서 늘 일을 만들어서 하기 때문에 쉴 시간이 없답니다.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하나라도 더 먹는다고요. 성공은 절대로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노력하라~~ 얻을 것이다~~!! 그러면 미래가 행복해지리라~~!! *다음 여행지는 오마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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