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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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서원이 지방의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인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급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전국적으로 인맥을 중시하던 서원이
성행하면서 향교의 교육적 기능은 많이 축소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고 지금은 봄 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나주향교는 다른 지역의 향교들이 축소되던 조선 중후기에도
비교적 건재하였다. 그것은 나주라는 큰 고을의 위력도 뒷받침
되었거니와 조선 성종대에 과거 급제자를 대량 배출한 명문향교라는
명성 탓도 있었다.
나주향교는 태조 7년(1398)에 지었으며 내부에 계성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로 인해 향교의 배치방법이 다른 향교와 다르다.
대부분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앞에 두고, 뒤에 제사공간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계성사가 있기 때문에 대성전과
명륜당의 위치가 바뀐 전묘후학을 따르고 있다.
호남지방의 향교 중 계성사가 있던 다른 향교는 전주향교와 함평향교 등이 있다.
나주향교의 대성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갖춘 건물로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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