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 하우스를 찾아가는데, 길은 왜 그리 막히는지, 에어컨도 없는 택시 안에서 더워죽는 줄 알았다.
타고르 하우스 가는 길를 안다고 했던 택시기사는 가다가 묻고 또 묻고를 반복했다.
한국사람인 나도 타고르를 아는데, 인도사람이 왜 타고르를 모르는 걸까? 나 원 참...
인도의 택시기사나 릭샤왈라들은 영어를 못해도, 가는 길을 몰라도, 일단 손님부터 태우고 본다.
길을 모르면 가다가 묻고 또 모르면 교통경찰한테 묻곤 한다.
처음부터 택시비을 흥정을 해서 간다 하더라도 길을 몰라 헤맨 거리까지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니 굳이 길을 모른다고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푹푹 찌는 더위에 꽉 막힌 도로 한복판에서 짜증이 폭발 안 할 수가 없다.
드디어 타고르 하우스 입구임을 알리는 곳에 도착, 처음 흥정한 가격인 200루피를 주고 내렸다.
STOP!
겨우 물어물어 찾아간 타고르 하우스, STOP! 들어가지 못한단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경비가 막아서면서 뭐라고 뭐라고 한다.
힌디어를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요. 휴관 일도 아닌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자 사상가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위대한 성자'라고 불리는
철학자 데벤드라나드 타고르의 아들이다. 일찍이 타고르 가(家)는 벵골 문예부흥의 중심이었다.
이곳은 벵골 르네상스의 중심인물들이 문학을 논하고 문화를 이야기하던 곳이란다.
엄청난 부호였던 타고르 가문의 땅에는 현재 라빈드라 바라띠 대학(Rabindra Bharati University)이 들어섰고
타고르 생가만 보존해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교정 안에는 타고르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잠깐 들어가서 동상만 찍고 가겠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면서 그냥 입구에서 찍어가란다.
겨우 물어물어 찾아간 타고르 하우스, 결국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방의 등불 / 타고르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벼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 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동방의 등불'은 타고르의 서정 시집 '기탄잘리'에 실린 시다.
이 시는 타고르가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일본 정부에 의해 초청되었을 때 발표되었다.
타고르가 당시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는 인도인들을 위하여 쓴 것인데
일본 식민지하에 놓인 한국의 처지가 비슷하여 '코리아'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희망과 믿음을 가지라는 격려의 뜻이 담겨 있으며
우리 민족에게 큰 감동과 자긍심을 일깨워준 시다.
타고르의 시처럼 코리아의 등불이 찬란히 빛나는 날이 오기를...
타고르 하우스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와 주변에 무얼 좀 먹을까 해서 두리번거려보았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식당이 하나도 안보였다. 주변은 또 얼마나 지저분한지 모른다.
거지가 돈을 달라고 새까만 손을 내밀며 내 옷자락을 잡아끈다.
모르는 척했다. 인도에서 거지한테 무언가를 주면 주변에 거지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고 했다.
그러니 좀 야박하기는 하지만 모르는 척할 수밖에.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하겠기에 택시를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배는 몹시 고팠지만, 택시를 타고 콜리지 스트리트(College Street)로 가기로 했다.
콜카타의 대학로인 콜리지 스트리트에 가면 뭔가 먹을 만한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택시 기사는 뜻밖에 젊은 청년이었다.
우리가 택시에 오르자 흥정도 안 하고 미터기를 꺾는 게 아닌가.
인도에서 미터기는 그저 장식용이지 이제껏 한 번도 미터기를 꺾는 걸 보지 못했다.
정말 미터기로 정직하게 요금을 받는 택시도 있구나! 감탄했다.
인도 택시기사들은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 정확하게 잘 데려다주지 못한다.
길을 잘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건지,
그도 아니면 영어식 명칭과 인도식 명칭이 다르기 때문인지,
아무튼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장소에 우리를 데려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도를 보여줘도 모른다. 하기야 지도도 영어로 된 것이라 모를 수도 있겠다.
이 젊은이도 콜리지 스트리트를 몰라서 뱅글뱅글 돌면서 헤매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구글 맵을 켜놓고 길을 가르쳐주면서 같이 찾아갔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한 방울씩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을씨년스럽게 불었다.
습도 때문에 날씨는 또 얼마나 후텁지근한지, 에어컨도 없는 택시를 타고 다닌다는 자체가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길가에 책방이 늘어서 있는 걸 보니 대학가가 아닐까 싶어 내렸다.
미터기로 57루피 나왔다. 인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본 미터기 택시였다.
너무 고마워서 70루피를 줬더니 함박웃음을 띠며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이런 양심적인 기사한테는 미터요금보다 더 줘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콜리지 스트리트는 콜카타의 대학들이 몰려있는 거리다.
수많은 책방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바로 인도 대학가 모습이다.
이렇게 책방이 즐비한 걸 보니 정말 학문을 연구하는 진정한 대학가 같았다.
우리나라 대학가는 온갖 술집과 카페, 옷가게들이 난무하는데 반해
인도 대학가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학문적인 환경이어서 부럽기까지 했다.
왠지 지성인의 산실 같은 느낌이랄까.
예전엔 우리나라에도 헌책 서점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대형서점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다.
콜리지 스트리트에는 프레지던시 대학, 산스크리트 대학, 스코티시 처치 대학, 메디컬 대학, 콜카타 대학 등
콜카타의 대학들이 모두 모여있다. 이들 대학은 최소 150년 이상의 전통을 지녔다고 한다.
프레지던시 대학은 1817년 개교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현재까지도 인도 대학 순위 톱 10위를 유지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란다.
좁은 골목길에 닥지닥지 붙어있는 손바닥만한 책방에 전문서적들이 차고 넘친다.
책 속에 길이 있음이, 책 속에 희망이 있음이 분명하다.
인도인에게 책이란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해방구일지도 모른다.
책을 늘 가까이하는 인도의 대학생들이야말로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
책방 주변에는 청첩장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대학가에 청첩장 파는 곳이라니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인도인들은 일찍 결혼하는 편이라 결혼 평균연령이 20살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생들도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학가에 청첩장 가게가 많다고 한다.
인도다운 커피를 마시려면 인디언 커피 하우스로 가야 한다고 했다.
대학가의 지적인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인디언 커피 하우스로 가라고 했다.
아침도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에 배가 몹시 고파 무어라도 먹으려고 인디언 커피 하우스로 갔다.
인디언 커피 하우스는 어두컴컴한 오래된 낡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있었다.
간판에 이렇게 쓰여있다. Indian Coffee Worker's Co-Operative Society LTD.
인디언 커피 하우스는 인도 지성의 산실로 인도의 지성들이 모여서 문화와 예술을 논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장소였으며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커피도 마시고, 끼니도 때우고, 대학가의 지적 분위기에도 젖을 겸해서
커피 하우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으악!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성의 산실이란 곳이 이런 거였구나.
뭔가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를 연상하면서 들어갔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바글거리는 대중식당일 줄은 정말 몰랐다.
대학생보다는 일반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하기야 대학가 근처에서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실 곳이 없으니 이곳으로 몰려들 수밖에.
내가 기대한 것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자리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와버렸다.
대학가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대로 된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
커피점도 안보이고 보이는 건 책방밖에 없었다. 인도 대학생들은 책만으로 배가 부른가 보다.
뒷골목에 길거리 음식점은 있었지만, 혹시 배탈이 나면 어쩌나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땡땡땡...
콜카타 도심 한복판을 느릿느릿 달리는 트램이 왔다는 소리다.
많은 사람이 트램이 완전히 정차하지도 않았는데, 익숙한 몸놀림으로 타고 내린다.
저 틈바구니에 끼여서 트램을 타고 가는 게 쉽지는 않겠구나.
콜카타에 가면 트램을 꼭 한번 타보리라 생각했던 원래 계획을 안타는 걸로 수정해버렸다.
트램은 인력거와 함께 콜카타에서만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트램은 1873년 말이 끄는 트램을 개통한 이후
140년째 콜카타의 거리를 누비고 다니며 인도인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엄청나게 쏟아져 내렸다.
어제도 이맘때쯤 스콜성 비가 무섭게 퍼붓더니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비가 내린다.
우산이 있었지만, 우산으로 가릴 비는 아니어서 실크샵 한쪽에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10여 분 정도만 걸어가면 간디 지하철역이 나오는데, 어떻게 가야할 지 난감했다.
비가 잦아지자 우산을 들고 간디 역으로 걸어갔다.
인도가 되어있지 않은 길이라 릭샤와 차를 피해 걷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길은 물바다가 되었고 차는 지나가면서 고인 빗물을 우리한테 선물로 줬다.
걷는게 너무 힘들어서 엉거주춤 서 있었더니, 지나가던 릭샤왈라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간디 역으로 간다고 했더니 타라고 손짓을 했다.
오토릭샤엔 이미 두 사람이 타고 있었고, 우리랑 합승한 것이다. 5루피씩 달라고 했다.
5루피면 100원도 안 되는 돈인데 이렇게 편하게 오다니 인도에서는 돈 가치가 참 크다는 생각을 했다.
낌새로 보아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서 비비디 박(BBD Bagh)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간디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파크스트리트 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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