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사 온 토마토와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또 약을 먹었다.
오늘은 밤 기차를 타고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떠나는 날이다.
바라나시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좀 더 쾌적한 공간에 있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낮에는 가트가 너무 더워서 돌아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아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카페를 찾다가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
일찌감치 호텔에서 나와 쇼핑몰에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기로 했다.
고도리아까지 가려면 미로 같은 골목길을 잘 빠져나와야만 한다.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은 얽히고설켜서 어디가 어딘지 통 분간할 수가 없다.
변변한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라 길 찾기는 더 힘들어진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가면 고도리아가 나오겠지 하고 무작정 따라 걸었다.
좁아터진 길에 이렇게 턱 하니 소들이 진을 치고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소똥도 밟지 않도록 잘 살피면서 걸어야 한다.
소가 대접을 받는 나라니만큼 소로 태어나려면 반드시 인도에서 태어나야 할 것 같다.
소뿐만 아니라 염소, 개들도 이렇게 진을 치고 바라나시를 찾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비좁은 골목길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오가는 사람들로 여전히 붐비고 있다.
더운 날씨지만 인도 국민차 짜이를 끓여서 파는 모습도 보인다.
바라나시 가트 주변에서 파는 짜이는 갠지스 강물로 만든다는 소리도 있다.
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갠지스 강물로 만든 짜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겠지만, 여행자에겐 좀 꺼림칙하지 않겠는가.
고로 나는 바라나시에서 짜이를 한 잔도 안 마셨다. ㅎㅎ
순두부처럼 보이는 게 라씨다. 요구르트와 비슷한 맛으로 약간 더 신맛이 강하다.
바라나시에서는 블루라씨와 시원라씨가 유명하다는데, 역시 배탈이 날까 봐 먹지 않았다.
블루라씨는 마약이 들어간 라씨를 한국 여자에게 먹이고 성추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여행자들은 시원라씨를 더 선호한단다.
좁은 골목길에 길을 가로막고 많은 사람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얼 하나 기웃거려보았더니 벌겋게 달궈진 녹이 슨 커다란 기름통이 보였다.
언제 갈았는지도 모를 새까만 기름에 무언가를 열심히 튀겨내고 있었다.
인도인들이 주로 먹는 푸리(puri)였다.
푸리는 짜파티 반죽을 넓게 펴서 기름에 넣고 튀긴 것이다.
마치 안이 텅 빈 공갈빵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새까만 손에 쥐어진 하얀 밀가루 반죽을 보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여행을 가면 가능하면 현지 음식을 많이 먹어보려고 하는데, 바라나시는 그게 안 되는 도시였다.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공중화장실도 볼 수 있다.
그냥 길에 노출된 화장실이다. 그러니 골목길에 지린내가 진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각종 기념품과 조잡한 목걸이와 팔찌를 파는 가게들도 즐비했다.
인도에 가면 꼭 이마에 빈디를 붙여봐야지 생각하기도 했었다.
인도여자처럼 팔찌도 목걸이도 주렁주렁 매달고 싶었고, 사리도 입어보고 싶었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 미로같은 좁은 골몰길을 빠져나갔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호객행위를 했다. 그냥 구경만 하고 싶은데,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특히 코끼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큰 코끼리 안에 또 작은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참 신기했다. 바라나시 온 기념으로 200루피(약 3,500원)를 주고 코끼리 한 마리를 샀다.
여러 가지 모형의 요니와 링가도 있었는데, 그중에서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모형을 200루피에 샀다.
남근(Linga)과 여근(Yoni)의 결합체 모형은 동남아 여행 때 많이 보았다.
남성의 창조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링가(남근)와 여성의 창조적 에너지를 나타내는 요니(여근)의 성스러운 결합은
우주의 생명을 낳고 유지하는 창조적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링가는 우주의 아버지요, 요니는 우주의 어머니이며, 링가는 하늘이요, 요니는 대지이다.
이런 의미를 지닌 링가와 요니의 결합은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인도에서도 시바 신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링가가 모셔진 곳을 볼 수 있는데,
힌두 신앙에서 링가는 성(性)적 상징이기보다는 신(神)적 에너지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앙코르 유적중 프놈바켕 :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교 사원]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를 구경하다 보면 링가를 쉽사리 만나볼 수 있다.
시바 신의 상징인 링가는 흔히 요니와 결합되어 있는 형태로 있다.
[↑앙코르 유적중 쁘리아 칸 사원 :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사원]
앙코르 유적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우주적 창조와 완전성이다.
신전의 중앙 성소에서 점점 작아지는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성스러운 생명의 보금자리인 자궁실에 다다른다.
생명의 원천인 자궁실 안에는 이렇게 링가가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목각인형들이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보트 한 척을 250루피(약 4,500원)에 샀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을 유유히 유람하는 나룻배 모형이다.
바라나시에서 사 온 목각 보트는 이렇게 우리 집 거실 장식장에 진열되어 있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를 기억하기 위해 항상 조그만 기념품을 사온다.
배낭여행이어서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살 수는 없지만, 한가지씩은 꼭 사온다.
먼 훗날 여행을 다닐 수 없을 때가 오면 그때 그 여행길을 추억하기 위함이다.
고도리아로 가는 길은 아비규환이었다.
밀리고 부딪치고 온전히 혼자서 편하게 걸어가기는 힘든 길이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도착한 고도리아 역시 아비규환, 카오스 상태였다.
빵빵거리는 각종 소음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넘치는 사람들과 탈것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이곳이 바로 삶의 전쟁터였다.
무언가를 먹으려고 기웃거려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먹을만한 게 없었다.
우리가 신기한듯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인도에서 나는 인기 연예인 부럽지 않은 시선을 한몸에 받고 다녔다. 하하^^
더운 나라라 기름에 튀기는 음식이 많았다.
달고 기름진 음식들이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고도리아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에어컨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곧바로 쇼핑몰로 가기로 했다. 쇼핑몰에는 에어컨이 있을 테니까.
바라나시를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미 내 몸은 너무 지쳐있어 만사가 귀찮았다.
그냥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곳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바라나시에 큰 쇼핑몰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지.
쇼핑몰에 가면 그 흔한 맥도날드라도 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릭샤를 흥정했다.
젊은 릭샤꾼과 쇼핑몰 앞까지 100루피로 흥정하고 탔다.
그는 쇼핑몰로 가는 도중에 어느 노점상에 들르더니 잎사귀에 싼 무엇을 사서 질겅질겅 씹었다.
우리보고 사겠냐고 물어서 안 산다고 했다. 껌인가 아니면 담배인가 아니면 혹시 마리화나?
건들거리며 질겅질겅 씹는 모습이 너무 불량해 보였다.
우리를 이상한 곳에 데려가서 어찌하려는 거 아닌가?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했다.
불량배처럼 건들거리며 달리는 젊은 릭샤꾼이 우리에겐 너무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다.
이릭샤꾼은 정말 우리를 쇼핑몰로 데려다주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돈을 뜯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대낮인데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안도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별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인도라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자꾸 골목길로만 가는 그에게 쇼핑몰로 가는 길 맞냐고 재차 물었고, 그는 당연히 쇼핑몰로 간다고 대답했다.
긴 골목길을 벗어나자 제법 쇼핑몰이 있을 법한 큰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에 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쇼핑몰에 도착해서 처음 흥정한 가격인 100루피를 줬더니 1인당 가격이 100루피라고 했다.
두 사람이니까 200루피를 달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당연히 두 사람이 100루피지 무슨 1인당 가격이 100루피냐고 따졌더니 200루피를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싸우기도 귀찮고 해서 100루피에 50루피를 더 얻어주고 내려버렸다.
그랬더니 씩 웃으며 댕큐라고 말하며 쏜살같이 가버렸다.
이래 당하고 저래 당하고, 알고도 당하고 모르고도 당하고, 나에게 바라나시는 사기꾼만 있는 도시처럼 보였다.
인도라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임에 틀림이 없었다.
바라나시에 처음 도착해서 탔던 오토릭샤부터 또 고돌리아에서 탔던 사이클 릭샤, 또 레스토랑에서의 돈 바꿔치기 등등
바라나시의 여정은 "내가 왜 인도에 왔을까?" 하는 회의감과 인도여행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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