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후쿠오카

애화가 서린 아카마 신궁과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러브송. 2012. 2. 22. 00:38

 

 

       시모노세키는 옛 조선의 문화 교류 사절단격인 조선 통신사가 상륙했던 곳으로

       이러한 한일 교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간몬 해협은 12세기 무가 `헤이가`가 몰락할 당시 전투장이었다.

      불과 여덟 살이던 안토쿠 왕이 폐전한 헤이가와 함께 이곳에서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안토쿠 왕을 기리기 위한 신사가 바로 아카마 신궁이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바다에 빠져 죽은 안토쿠 왕의 애환을 말해주는 듯 회색빛 바다엔 눈이 내리고 있다.

 

 

 

 

 

 

 

      아카마 신궁(아카마 진구, 적간신궁)은 시모노세키 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아카는 일본어로 붉을 적(赤)자를 나타내는데, 따라서 아카마 신궁은 붉은 신궁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붉은색은 슬픔을 이야기한다.
      아카마 신궁은 어린 안토쿠 왕의 비운을 표현하려고 붉은 색을 사용했나 보다.

 

 

 

 

    도로변에 신궁임을 알리는 석조로 만들어진 도리이가 보인다.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 앞에는 상징적으로 도리이가  있다.

    신사나 신궁의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타내는 의식적인 관문으로

    불경한 곳(일반세계)과 신성한 곳(신사)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말한다.

    도리이란 말은 한자로 鳥居, 새가 있는 곳, 즉 새가 앉은 자리를 말하는데,

    이 새는 보통 새가 아닌 신이 새로 화신(神鳥)한 것을 의미한다.

    도리이는 보통 2개의 원통형 수직 기둥 위에 직 4각형의 들보가 가로로 2개 얹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리이는 흔히 붉은색으로 칠을 하며, 신사의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

    또 산이나 바위 같은 곳에 세워 그곳이 신성한 장소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도리이를 들어서자 빨간색과 흰색의 조화가 강렬한 인상을 풍기며 시선을 잡아끈다.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스이텐몬(水天門),

    어릴 적에 동화책에서 보았던 신비로운 용궁 모습을 하고 있다.

    세 살에 즉위했다가 여덟 살에 ‘용궁으로 가자’는 외할머니 말에 함께 바다에 뛰어든

    안토쿠 왕의 혼백을 모시는 곳이라고 하더니 용궁의 모습을 하고 있나 보다.

 

 

 

 

 

      안토쿠 왕은 세 살에 일본의 제81대 천황으로 즉위했다가 두 신하 다이라 기요모리와

      미나모토 요리토모 사이에 벌어진 권력다툼에 휘말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이다.

 

 

 

 

       전쟁에서 전력이 열세였던 다이라는 우세했던 미나모토에 의해 교토에서 쫓겨나는데,

       안토쿠 천황의 외조모가 어린 안토쿠 천황을 데리고 서쪽으로 도망을 친다.

       그러다가 4년을 추적해오던 미나모토의 무리 때문에 시모노세키 앞바다인

       저 아래 단노우라에서 다이라의 무리가 최후를 맞게 되니

       운이 다한걸 안 외조모가 어린 천황 안토쿠를 끌어안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신사나 신궁에는 상징적으로 국화문양이 그려져 있다.

             국화문양은 일본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의 국화는 벚꽃으로 흔히들 알고 있다.

             벚꽃은 서민들의 꽃이요, 황실의 꽃은 국화이다.
             벚꽃은 봄에 여러 꽃과 함께 지천으로 피는 꽃이지만,

             국화는 가을에 고고하게 홀로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에서 고고한 황실을 상징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일본의 국화라고 알고 있는 그 벚꽃의 자생지가
우리나라 제주도라는 것이다.
             일본의 국화로 여기고 있는 벚꽃이 우리나라 토종 꽃나무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자.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회랑의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그림이 눈길을 끈다.

      에마(소원을 적어 거는 팻말)를 크게 만들어 놓았나 보다.

 

 

 

 

      개운초복(開運招福)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오면 운이 열리고 복이 온다는 뜻일까?

 

 

 

 

 

      안토쿠 천왕을 모신 아카마 신궁은 원래 조선통신사의 객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나무에 매달아 놓은 수많은 오미쿠지(御新籤)가 눈길을 붙잡는다.

     오미쿠지는 일본의 절이나 신사 등에서 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로
     신사나 절의 나무나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종이를 말한다.

     사람들은 오미쿠지를 사서 길한 내용이 나오면 가져가고
     흉한 점괘가 나오면 이렇게 매달아 놓고 액땜을 한다고 한다.

 

 

 

 

 

     신궁의 외배전과 내배전 사이에는 용궁을 상징하는 파란 빛깔의 물이 있다.

     온통 희고 붉은 색깔 속에서 파란 물빛이 유난히 돋보인다.

     아마도 이 물은 맑고 깨끗한 성역을 표시하는 것일 게다.

     그 물 너머에 안토쿠 왕이 모셔져 있는데, 내배전은 출입금지다.

 

 

 

 

       참배자는 박수를 치고 처마에 매달려 있는 밧줄을 당겨 종을 울린다. 

       안에 있는 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예를 갖춘다.   

 

 

 

 

     자그만 바가지가 가지런히 놓인 정자가 보인다.

     이곳은 신을 만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손과 입을 씻는 곳이다.
     먼저 왼손을 씻고, 그다음에 오른손을 씻고, 그다음에 입을 씻는다.


 

 

 

     일본사람들은 이물을 마시지 않는데,

     한국 관광객이나 중국 관광객들은 마시는 물인 줄 알고 마신다고 한다.
     물론 마셔도 죽지는 않겠지만.ㅎㅎ..

 

 

 

 

 

      ‘방일당(芳一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정자 안에 혼자 앉아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목상이 보인다.

      슬픈 사연을 암시라도 하듯 하얀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목상은 신궁 터에 있었던 아미타지라는 절의 승려 호이치이다.

      그는 장님이지만 비파를 매우 잘 연주해 단노우라 전투에서 멸망한 망령들에까지 불려 가서 연주를 하곤 했다.

      그 일을 알게 된 이 절의 주지는 그를 불러 그의 온몸에다가 반야심경을 써주며

     ‘밤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꾸를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고 일러주었다.

      밤이 되자 망령의 심부름꾼은 또 호이치를 데리러 왔다.

      그런데 그는 없고 허공에 떠있는 두 개의 귀만 있어 ‘이것이라도 가져가야지.’ 하며 두 귀를 싹둑 베어 갔다고 한다.

      그래서 장님이었던 그는 귀마저 잃고 말았다.

 

 

 

 

       야트막한 담장에 작은 철문이 달려있고, 

       낮은 담장 너머로 여남은 개의 작은 자연석들이 촘촘히 서 있는데, 다이라 집안의 묘이다.

       돌을 세워 만든 초라한 무덤 위로 내리는 하얀 눈발이 몰락한 집안을 위로라도 하는 듯하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조화를 이룬 건물 위로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다.

 

 

 

 

      다양한 기념품과 미니 부적등 기원 품이 들어있는 오미쿠지를 팔고 있다.

 

 

 

 

 

       평씨 집안의 게라는 말이다.

       전설이 의하면 헤이케의 사무라이들은 게가 되어 지금도 일본 단노우라 바다 속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게의 등딱지에는 섬뜩하리만큼 험상궂은 기이한 무늬가 박혀 있는데,

       마치 사무라이의 얼굴을 닮은 것 같아서 어부들은 이런 게가 잡히면 단노우라 해전을 기리는 뜻에서

       먹지 않고 바다로 다시 놓아준다고 한다.

 

 

 

      단노우라에서 미나모토에게 패전한 다이라 무리가 험상궂은 얼굴로 바다에 빠졌는데
      그 얼굴이 게에 박히면서 마치 도장을 찍은 듯 험상궂은 모습의 게가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재미있는 이야기.ㅎㅎ..

 

 

 

 

       수천공양탑(13층보탑)

       현대적인 감각의 13층 석탑도 보인다.

      

 

 

 

      여덟 살의 어린 안토쿠 왕이 빠져 죽었다는 바다가 용궁 문 너머로 무심히 흐르고 있다.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 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조선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라고 하였다.

 

 

 

 

[조선통신사 상륙엄류지지(朝鮮通信使上陸淹留之地) 비석]

 


 

 

 

 

      아카마 신궁 맞은 편에 있는 공원에는 400년 전인 1607년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한

      조선통신사들의 상륙을 기념하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시모노세키는 일본 본토 최초의 조선통신사 기항지로 이를 기념하고

      통신사의 역사와 공적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비석을 세웠다.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에서 바라본 간몬대교, 일본의 혼슈와 큐슈를 이어주는 대교다.

 

 

 

 

 

 

 

      아카마신궁 바로 옆에 일청전쟁 기념관이란 팻말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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