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내 여 행/제 주 도

[제주도] 날아다니는 섬 비양도로 떠나는 시간여행

러브송. 2011. 5. 7. 17:06

 

 

 

 

뭍에 사는 사람들은 왜 섬을 동경할까.

사람들을 매혹하는 섬은 고립이며, 동시에 자유다.

모든 걸 훌훌 벗어 던지고 햇살 아래 반짝이는 쪽빛 바다 위를 배 저어 그 섬에 가리라.

 

 

 

 

 

제주도 서쪽 한림 앞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섬 하나, 언제부턴가 나는 그 섬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옥빛 바다의 신비로움을 가득 머금고 있는 천년의 전설 속에 묻혀 있는 외딴 섬 비양도.

연락선이 끊어진 비양도의 시간은 천년의 세월에 갇혀 무심히 따로 흘러간다.

나도 그 섬에 가서, 천년의 섬에 갇혀서, 현실의 시간이 아닌 천년 전의 시간 속에서 홀로 자유로우리라.

 

 

 

 

오늘 제주도는 심한 황사 때문에 온통 뿌연 하늘과 회색빛 바다만 보인다. 

제주도 앞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어 비양도로 들어가지 못할까봐 밤새 조바심을 쳤었는데

다행히 아침에 배가 뜬다는 반가운 소식에 서둘러 한림항으로 갔다.

 

 

 

     

 

                

               비양도까지는 한림항에서 도항선이 운항되고 있는데, 배를 타고 15분이면 비양도 선착장에 닿는다.

               배는 평일 오전 9시, 오후 3시 두 차례만 운항되고, 휴일에는 12시에 배가 한 차례 더 운항되고 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비양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하다. 도항선이어서 뱃삯도 1,500원이다.

               대합실에 무거운 배낭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카메라만 들고 뱃고동을 울리는 선착장으로 갔다.

               천년전의 시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시작되었다.

 

 

     

 

 

            귀여운 꼬마 친구들이 함께 배를 탔다.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 학생들이다.

            머리를 깎으려고 전날 한림에 나갔다가 휴일이라 문을 연 미용실이 없어서 그냥 학교에 가는 길이란다.

            전교생이 모두 4명인데, 5학년, 4학년, 3학년, 1학년 각각 한 명씩이고, 선생님이 두 분이시란다.

            학창시절 교직과목을 이수하면서 섬마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꾸었었는데,

            이렇게 막상 티 없이 맑은 섬 아이들을 보니 철없던 학창시절이 떠올라 남몰래 미소 지어본다.

 

 

 

 

비양도는 고려시대에 화산 폭발로 바다 위에 불쑥 솟은 섬으로 섬 모양은 타원형이다.

해발 114m의 섬이자 기생화산인 비양도는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보이기도 하고,

중절모를 엎어 놓은듯하기도 하고, 계란을 눕혀 놓은듯하기도 하다.

비양도 앞바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자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햇볕에 반사되는 그 투명한 물색을 보려고 그토록 비양도에 가고 싶어했을까.

 

 

 

 

섬 모양이 단아하고 아름다운 비양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섬의 생성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부터 1천년전, 제주도에는 소악이 99봉뿐이어서 100봉을 못 채워서 대국을 형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제주도 서북쪽인 중국 쪽에서 1개의 봉우리가 제주도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 봉우리가 굉음과 함께 한림 앞바다까지 이르렀을 때, 이 근처에 살던 한 여인이 밤중에 그 소리에 놀라 집 밖으로 나갔다가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사는 수원리 쪽에 부딪힐 것 같아 멈추라고 고함치자 놀랍게도 지금의 위치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고 한다.
만일 이때 이런 일이 없었다면 제주도는 100봉을 형성하여 대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전설이 지금까지도 민간에 전해져 오고 있다.
이렇게 비양도는 '날아온 섬'이란 뜻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비양도에 들어서니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였다는 기념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비양도가 드라마 '봄날'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단다.

섬 처녀로 나왔던 고현정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비양도의 하루' OST를 듣고 또 들어본다.

 

 

 

 

비양항 포구에 들어서니 아직 일을 나가지 않은 고깃배들이 보이고, 주민들은 배를 타고 한림으로 나갔는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양도 주민들은 농업보다는 주로 어업활동을 하는데, 섬 주변에는 80 여종의 풍부어종과 각종 해조류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해녀들은 선착장 부근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전복과 소라, 오분자기, 돌문어, 톳, 우뭇가사리 등의 해초를 채취한다.

 

 

 

 

 

비양도를 둘러보는 데는 느릿느릿 걸어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비양도에 한번 들어오면 다음 배가 들어올 때까지 6시간은 꼼짝없이 섬에 갇혀 있어야 한다.

행복한 구속이며 동시에 자유인 것이다. 6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할까.

천천히 해안도로도 걸어보고, 비양봉에도 올라보고, 해녀들이 따오는 싱싱한 소라회도 먹어보고, 상상만 해도 즐겁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아침에 일찍 서둘러 오는 바람에 아침밥을 먹지 못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선착장 입구에 있는 호돌이 식당으로 갔다. 칠순이 넘으셨다는 할머니가 세상 살기가 귀찮은 듯한 표정을 하고 계신다.

               비양도의 명물 보말죽과 시원한 바다를 담은 소라물회를 먹고 싶었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만들기가 어렵다고 한 가지만 먹으라 하신다.

               보말죽을 주문하고 모슬포에서 먹어본 보말국수의 맛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진동하더니 역시나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보말죽은 양도 푸짐하고 맛도 기가 막힌다.

               일흔 한 살이신 할머니의 삶과 애환을 들으며 느긋하게 여유를 즐겼다.

               나에게 오롯이 6시간이나 있는데, 다급해할 필요도 없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돌담 마을 올레길이다.

비양도에는 올레길 표시인 푸른 화살표와 깃발이 없으니 그냥 내가 걷는 그 길이 바로 올레길이다.

민박집도 보이고 작은 슈퍼도 있고 두어 개의 식당도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일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타박타박 걷는 발걸음 소리만 바람결에 들릴 뿐 마을 전체가 너무 조용하고 한적하다.

 

 

 

 

걷는 일은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선박과 같다고 했다.

배는 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바람에 부대끼며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다.

걷는 일도 마찬가지다. 말없이 조용히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쉴새없이 과거의 추억을 들추어내고 있다.

어쩌면 첫사랑의 기억을 만지작거리며 발그스레한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흘릴지도 모른다.

 

 

 

 

비양도 보건 진료소 앞에도 봄날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비양봉이 호위하고 있는 한림초교 비양분교가 정겹게 느껴진다.

같이 배를 타고 온 꼬마 친구들이 지금쯤 선생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겠지.

 

 

 

 

비양도에는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일주도로가 있어 트레킹을 하거나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기에 아주 좋다.
호젓하게 걷는 길에 파도와 속삭이는 갯바위도 만나고 해녀들이 따온 미역도 만난다.

바다를 보며 걷는 이 길이 참으로 행복하고 즐겁다.

 

 

 

 

비양도 동남쪽에 있는 펄랑못은 해수로 만들어진 염습지로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간만조 수위를 형성하고 있다.
펄랑못 서쪽 능선에는 해송과 억새, 대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과거 저지대에는 경작지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펄랑못에는 목재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자연생태를 관찰하면서 이름 모를 들꽃과 친구 하면서 여유있게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

 

 

 

 

해안을 따라 걸으면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기암괴석들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과 햇살에 반짝이는 코발트 빛 바다를 상상했지만,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심한 황사로 비양도의 하늘도 바다도 온통 뿌연 색이다.

기암괴석들 사이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만 파랗게 파랗게 들려온다.

 

 

아기를 업은 임신부가 남편을 기다리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의 '애기업은돌'이다.

애기업은돌에는 그 앞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전해져 오고 있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야생화가 바다를 향해 곱게 피어 있다.

 

 

 

 

비양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곳이란다.
용암기종군은 규모와 산출 상태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화산지역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비양도 용암기종이 진열되어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코끼리 섬이다.

커다란 코끼리를 닮은 갯바위가 멋들어지게 바다 위에 오롯이 떠 있다.

 

 

 

 

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비양봉으로 올라가는 목책계단이 보인다. 얼마나 올라가면 비양봉이 보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봄이 이른 탓인지 비양봉 중턱에는 누런 억새풀이 봉우리를 향하여 누워 있다.

제주의 바람을 노래하는 억새풀이 해풍에 빗질을 받으며 초록빛을 몽땅 바닷물에 빼앗겨버린 탓일까.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누런 억새는 초록빛 바닷물로 파랗게 물들여지겠지.

 

 

 

 

비양봉 올라가는 길가로 억새풀이 춤을 추고 있다.

비양봉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리며 꼭대기에는 천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분화구가 남아 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오솔길 위로 하얀 등대가 보인다.

그곳에 올라서면 제주의 한림과 협재해수욕장의 반짝이는 모래사장, 제주의 한라산이 훤히 내려다보일 것이다.

 

 

 

 

비양봉 정상에 올라서니 자그마한 무인등대가 우리를 맞는다.

 

 

 

 

비양봉 정상에 방목하고 있는 염소들이 나를 보고 벼랑 아래로 내달리더니 카메라를 보고 얼른 포즈를 취한다.

올레꾼들의 카메라에 익숙해진 탓일까, 멋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을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  

 

 

 

 

분화구엔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다.

비양봉 분화구에서만 자란다는 비양나무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비양나무는 제주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비양나무 자생지인 분화구에는 비양나무 외에 소나무, 으름나무, 팽나무, 섬 오가피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비양봉 분화구에서만 산다는 비양나무다.

분화구에서는 비양나무를 찾을 수 없었지만, 마을 민박집 뜰앞에 얌전히 심어져 있다.

 

 

 

 

비양봉에 올라섰지만 짙은 황사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제주도를 호위하고 있는 한라산도 협재해수욕장의 은빛 모래사장도 에메랄드빛 바다도 온통 희뿌연 안갯속이다.

에잇! 미운 황사 같으니라고.

 

 

 

 

비양도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동차이다.

제주를 바라보는 조그만 항구 주변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자동차가 필요 없단다.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방목하는 말들도 보인다.

 

 

 

 

예쁜 꽃길도 걸으며 고립의 자유를 만끽한다. 

 

 

 

 

비양도의 5월도 역시 노란 유채꽃이다. 5월의 제주도는 어딜 가나 노란색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저 등대는 누굴 기다리는 걸까.

통통거리는 배를 타고 올 올레꾼을 기다리는 걸까. 만선을 하고 돌아오는 어부를 기다리는 걸까.

비양도 해안도로를 두 바퀴나 돌고, 비양봉에도 올라보고, 그래도 배가 오려면 시간은 아직 널널하게 남아 있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내음이 물씬 나는 미역을 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소라나 보말, 아니 전복을 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섬에 갇혀 있는 자유의 시간, 이제 무엇을 할까.

                해녀들이 방금 따온 싱싱한 소라회 한 접시 먹고 싶은 마음에 해녀 집을 기웃기웃거렸다.

                해녀들은 물질을 하러 나가고 텅 빈 집에 소라 껍데기만 잔뜩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섬집 아기처럼 텅빈 집에서 해녀를 기다렸지만, 해녀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서 연락선 고동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섬마을에 시끄러운 바깥세상이 밀려들어 오는 것 같다.

투명한 에메랄드 빛 바다에 지친 일상의 쉼표를 찍고, 문득 스며드는 편안함에 나를 온전히 맡긴 하루.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깊이 정들었던 비양도에 작별을 고하고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푸른 공기와 푸른 바다 내음을 가슴 가득 담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비양도를 찾을 수 있을까. 두고두고 그리움으로 남을 나의 비양도여~~ 안녕~~!

 

2011.5.2.비양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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