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4코스는 당케포구에서 남원포구까지 23km에 달하는 긴 거리입니다.
해안코스와 오름, 중산간 코스가 합쳐져서 아름다운 올레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3코스 22km에 이어 4코스 23km를 걸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올레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나 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출발~ ~
평온한 표선해수욕장입니다.
바람 한점 없을 것 같은 평온함 뒤에 모랫바람이 세차게 불어댑니다.
해녀상(海女像)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정겹게 들려오나
힘들고 어렵던 오래 전부터
고달픈 삶 꾸려 오신
우리 어머니 ! 우리 누이 !
태왁 하나 의지하여
망망대해 거칠 것 없어라
강인한 제주여성의 표상 !
동쪽 하늘의 샛별처럼
더욱 빛나고
우리 제주인의 마음속에
영원하리라 !
당케포구는 올레 4코스 시작점입니다.
당케포구는 설문대할망이 만든 포구랍니다.
이곳 마을 앞바다에는 수심이 깊어 폭풍이 몰아치면 파도가 마을을 덮쳤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주 창조신인 설문대할망에게 마을 앞바다를 메워달라고 빌었습니다.
할망은 하룻밤 만에 표선 앞바다를 메워 모래밭을 만들고 더이상 피해를 입지 않게 했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포구 끝에 설문대할망을 기리는 할망당을 짓고 그의 공덕을 기리고 있으며
한 달에 두 번 해녀들이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당케포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면 해비치리조트가 나옵니다.
방애동산은 길손들이 쌓아 올린 돌탑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누구의 소망이 이토록 간절한 것일까요?
올레꾼들은 저마다 돌탑에 소망 하나를 얹어놓고 갑니다.
해녀는 제주여성의 강인함과 부지런함을 상징합니다.
올레길을 연 서명숙 대표는 제주 해녀들을 여신으로 불렀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해산물을 캐내는 숨비소리에는
그녀들의 한과 고통이 서려 있습니다.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등대는 별에서 오는 편지와 별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를 넣어두는 우체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나 하고 등대를 찾아가고
별에게 보낼 편지를 넣으려고 등대를 찾아간다.
나는 이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만 찾아다니고 싶어서
무수한 섬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섬에 가보니 또 다른 섬이 있었다.
그것은 등대였다.
- 이생진님의 <자서> 中에서-
혼자 서 있으라 해 놓고 / 이생진
저렇게 외로운 곳에
혼자 서 있으라 해놓고
저희들만 떠난
등대 만드는 사람들이 잔인해
한번이라도 돌아와서
'얼마나 외로우냐'고 물어본다면 몰라도
산 자는 등대를 외롭게 하고, 죽은 자는 곁에 남아 등대를 외롭지 않게 합니다.
바다에는 먼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습니다.
바다는 그리움에 몸살을 앓고.. 바다는 기다림에 무너져 내립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폭신폭신 꽃길을 걸어가니 사뿐사뿐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집니다.
야생화 전시장 같은 바닷길이 이어집니다.
바다의 향기인지 꽃의 향기인지 모를 고운 향내가 올레길을 향기롭게 합니다.
4코스는 죽음의 올레라 불릴 만큼 길고도 지루한데, 이렇게 예쁜 꽃을 만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태양보다 더 붉은 동백꽃과 빨간 먼나무에 정신이 팔려 그만 올레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4코스는 이정표가 다른 코스보다는 잘 되어 있지 않아 길을 잃기가 쉬워요.
올레길을 벗어나 한참을 헤매다 만난 초등학교입니다.
아름다운 학교, 꿈이 이루어지는 가마초등학교랍니다.
길이 어쩜 이렇게 예쁠까요?
이리저리 올레길 표시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올레길에 들어섰습니다.
바닷가 샤인빌 리조트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가는개 앞바다에서 샤인빌 리조트로 이어지는 바위길은 제주의 장병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일명 '해병대길'이라고 하는 이 길은 장병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는 길입니다.
그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지금 어떻게 이 길을 편하게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우린 오늘도 이렇게 마주보고 서 있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길은 행복합니다.
바닷물이 어찌나 맑은지 속살이 그대로 다 드러나 보입니다.
길을 알려주는 반가운 표시, 올레꾼은 이 리본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몰라요. 길을 잃어버려도 당황하지 말고 잘 찾아보세요.
금방 올레표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우거진 숲이 터널을 만들어 햇살에 지친 올레꾼에게 시원한 길을 만들어줍니다.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샤인빌 리조트입니다.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여있습니다.
올레꾼은 외부인인가요? 몰래 살금살금 들어가 봅니다.
빨간 동백꽃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파란 바다로 이어집니다.
쉬엄쉬엄 걷는 길가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그리운 꽃편지 / 김 용 택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지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
꽃 보며 스치는 그 많은 생각 중에서
제 생각에 머무셔요.
머무는 그곳, 그 순간에 내가 꽃 피겠어요.
꽃들이 나를 가둬, 갈 수 없어
꽃그늘 아래 앉아 그리운 편지 씁니다.
소식 주셔요.
하늘거리는 꽃길을 걸어가면 파란 바다가 넘실거립니다.
올레길은 토산마을로 이어집니다. 아직도 13.5km나 남았어요.
일주도로를 건너 중산간 길로 접어들면 온통 감귤 과수원의 연속입니다.
사람은 한 명도 볼 수 없는 지루하고도 지루한 길이 이어집니다.
먼 길을 걸어온 올레꾼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합니다.
하루하루 걷는 날이 쌓여갈수록 다리도 아프고 발도 아픕니다.
길을 걷다가 쉼터가 보이면 반드시 쉬어가는 센스...
경험상 올레길 걸을 때는 발가락 양말이 최고입니다.
신을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에선 좀 민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16코스를 완주하면서
발에 물집 하나 안 잡힌 것은 바로 이 발가락 양말 덕분이랍니다.
휴식을 취할 때는 반드시 신발도 벗어놓고, 양말도 훌훌 벗어버리세요.
그런 다음 퉁퉁 부어오른 발가락에 운동을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넷...
하늘을 향해 발을 지켜들고 달아오른 발의 열기를 바람에 식힙니다.
거짓말처럼 발에 쌓인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고 다시 힘이 솟구쳐 저절로 걸어진답니다.
중산간 길로 접어들면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을 터벅터벅 걷노라면 마치 수행자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올레 4코스는 사색의 올레길, 수행자의 올레길, 고독의 올레길입니다.
망오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입니다. 남은 거리가 12km...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는 것보다 아직도 반씩이나 남아있다는 긍정의 표현처럼
이제 12km밖에 안 남았으니 이 정도쯤 걷는 거야 문제없답니다.
망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은 끝없는 돌계단으로 이어집니다.
망오름 정상에 올라가니 토산봉수대가 있습니다.
토산봉수는 교신관계를 연구할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유적이므로 훼손 시에는 처벌을 받는답니다.
망오름에 올라 내려다본 전경입니다. 오름 정상엔 많은 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름 숲길을 빠져나오니 무덤 가에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무덤에 누워있는 죽은 자는 유채꽃 피는 이 봄날이 누구보다도 행복하겠지요.
거슨새미에 도착했습니다.
한라산을 향해 물이 거슬러 흐른다 하여 '거슨새미'라 합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는 순리대로 바다를 향해 흐르는 '노단새미'가 있습니다.
이 두 곳 샘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수질이 좋고 양이 많아
토산리 설촌 이래 상수도 시설이 되기 전까지 인근마을(가시, 세화, 신흥)의
중요한 생활용수로 사용되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온통 노란색으로 칠을 한 노란 건물이 보입니다.
황궁이라는 종교단체 건물이랍니다.
황궁을 지나면 영천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 이정하
사랑은 그처럼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나무들을 보라.
그들도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함께 서 있으나 너무 가깝게 서 있지 않는 것.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그늘을 입히지 않는 것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오래간다.
길 / 용혜원
길을 걷는다는 것은
갇혔던 곳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천천히 걸으면
늘 분주했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걸으면
생각이 새로워지고
만남이 새로워지고
느낌이 달라진다.
바쁘게 뛰어다닌다고
꼭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색할 시간이 필요하다
삶은 체험 속에서 변화된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라는 울타리 안에
자기라는 틀에
꼭 갇혀 있는 사람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한다.
길은 태흥 2리 해안도로로 이어집니다. 남은 거리가 4.4km...
해안 올레길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은 파도가 밀려들고 밀려갈 때 억새는 파도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경숙님의 갈대처럼 억새도 자기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일까요?
산다는 것은 속으로는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또 새로운 길이 이어지고 올레꾼은 그 길을 걷고 또 걸어갑니다.
올레 우체국입니다.
가던 길 멈추고 잠시 머물러 집에 두고 온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그대에게 안부 한 줄 띄워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멀리 남원포구가 보입니다.
쪽빛 바다와 파란 하늘...
이국적인 풍광에 산타모니카에 온듯한 착각이 입니다.
4코스는 올레 중에서 23km에 달하는 가장 긴 코스입니다.
쉽지 않은 거리였지만 다 걷고 나니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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