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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세차하는 여자

러브송. 2006. 6. 15. 01:12

     이른 새벽. 아이를 태우고 꽤 능숙한 솜씨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녀는 라디오를 튼다. 그녀가 좋아하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선정한
     오늘의 말, 그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옆에 타고 있는 아이도 
     그녀가 즐겨듣는 ‘말 코너’만 끝나면 좋아하는 노래 모음곡이 담긴 CD를 
     집어넣고 소리를 한껏 키워 놓는다. 힘 있는 노래를 들으면 하루 종일 
     공부가 잘된다 하니 그 여자는 듣기 싫어도 참아내는 눈치였다. 
     창밖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태풍으로 인하여 바람이 나무를 세차게 
     흔들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커다란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쳐 
     가늘게 부서지더니 이내 작은 물방울로 변하여 유리창에 매달려 있다. 
     잠깐 유리창을 열어본다. 사선으로 뿌리는 비는 살 속으로 파고들 것 같은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늘 지나던 길인데 오늘은 거리가 유난히 낯설어 
     보인다. 비 때문인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셀프 자동차 세차장.....’ 그녀는 비 오는 날 세차하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세차가 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자동차 
     내부가 지저분하게 보인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와 가라앉은 공기까지 
     그녀의 기분을 붙잡고 늘어진다.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서는 그녀의 마음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마침 비는 
     맞아도 좋을 만큼 내리고 비에 젖어도 아깝지 않은 간편한 옷차림이 
     그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자동 세차기에 동전을 집어넣고 호수 끝에 매달린 손잡이에 힘을 주니 
     힘찬 물줄기가 뻗어나온다. 흙탕물에 뒤엉킨 먼지가 씻겨 내려가고 
     자동차의 하얀 살갗이 드러났다. 야무지게 비누칠까지 마치고 내부 청소에 
     들어갔다. 미세한 먼지까지 강하게 빨아들이는 청소기는 겹겹이 쌓인 
     무거운 공기까지 흡수해 버렸다. 
     그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마음속을 청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주기적으로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마음이 삭막해지고 
     왠지 모를 답답함에 쩔쩔매는 마음을 누르고 살려니 꽤나 힘든 눈치이다. 
     그러나 사는 것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니 오로지 사는 일에 매달려 있는 남편과 
     공부하는 아이가 마음에 걸려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그저 
     아쉬움만이 힐끔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갑갑하고 산만한 것들을 시원하게 던져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디 비 오는 날의 세차만으로 말끔하게 정리 되겠냐 만은 
     그래도 잠시나마 시원한 여름의 청량제 같은 맛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요란하게 소리 내며 울어 대던 청소기는 제명을 다했는지 탈탈거리더니 
     숨을 멈춰버렸다. 차 안에 향긋한 헤즐럿 커피 향을 두어 방울 떨어뜨린 후 
     문을 닫아놓는다.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함이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처마 밑에 선채 길게 숨을 들여 마신다.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흥건하게 젖어버린 옷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들고 여유롭게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비 오는 날 세차하는 그녀가 이상했나보다 정신 나간 여자 바라보듯... 
     그러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이는 곳을 청소하기 위해서 세차를 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진드기처럼 붙어있는 어두운 기분과 구석구석 가라앉은 무거운 공기를
     털어내는 상쾌한 기분을 맛보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남들이 알 턱이 
     없지만, 그것을 알아주어야 할 필요성 또한 느끼지 않았으니 비 오는 
     날의 세차는 적어도 그녀에게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여행 떠나는 사람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차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기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 차에 태워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 맑고 상쾌한 기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다. 
     전/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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