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간 : 2015년 9월 30일 ~ 10월 21일
*여행루트 : 인천 → 쿠알라룸푸르 경유 → 콜카타 → 바라나시 → 아그라 → 자이푸르 → 델리 → 뭄바이 → 고아 → 코치 → 첸나이 → 인천
인도로 배낭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다들 왜 하필 인도로 가느냐고 했다.
유럽도 있고, 미국도 있고, 스페인도 있고, 기타 등등 인도보다 더 좋은 나라들이 얼마든지 많은데, 라고 덧붙였다.
인도 배낭여행이 매우 고생스럽고 힘들겠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한 지인은 후진국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을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러면 나는 왜 인도로 가려는 걸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근사한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인도라는 나라가 배낭여행지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되는 의미밖에 구체적인 의미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패키지여행을 제외하고, 38일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을 비롯해 유럽, 동남아 등지를 배낭여행으로 140여 일이나 다녀왔다.
이 정도의 여행 구력이면 또 남편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인도쯤은 별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낙관을 했다.
세계 4대 문명지로 손꼽히는 인더스 문명.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황하 문명과 더불어 4대 문명으로 꼽히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인도.
누군가는 전설보다 신화보다 더 오래된 나라가 인도라고 했다.
이제껏 접할 수 없었던 이색적인 분위기가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고, 나의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인도가 일생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손꼽히기도 하고
인도에 가면 뭔가 철학적인 사고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책으로, 또 영상으로만 접했던 인도가 천의 얼굴을 가지고 더욱 신비롭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인도여행이 명상을 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나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라나시의 이색적인 문화 충격은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더 오래된 도시인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강둑 위에서는 화장을 하고, 그 뼛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내고, 또 타다남은 사체를 강물에 떠내려 보내고,
바로 그 강물에서는 수많은 순례자가 양치를 하고, 몸을 적시고,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고, 심지어는 마시기까지 했다.
현재의 삶과 죽음, 사후 세계까지 공존하는 갠지스 강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곳,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은 비록 더럽고 악취가 나는 물이었지만
인도인들에게는 단순한 강을 넘어 성스러운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인크래더블 인디아! (Incredible India)
인도 관광청에서 내건 슬로건처럼 방문하는 도시마다 놀라움과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시끄럽고 더럽고 냄새나고 난잡한 거리.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그들의 삶 속에는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무질서지만,
나에겐 무척 불편한 무질서한 거리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무질서가 만들어낸 꾸밈없는 매력을 가진 나라가 인도라고 하지만,
나는 엄청난 인파와 요란한 경적 소리, 불쾌한 악취, 각종 먼지와 매연에 시달리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길을 한 발짝 내딛기조차 힘들어서 급기야는 맨탈붕괴에까지 이르렀다.
이 엄청난 상황을 모두 소화해내기에는 내 체력이 약해서 여행 내내 골골거리며 알약에 의존하며 다녀야만 했다.
나의 인도여행은 수많은 호객꾼 아저씨들과의 싸움으로 시작되었다.
호텔 문을 나서면 어김없이 들러붙는 수십 명의 호객꾼들과 끊임없는 실랑이를 벌려야 했다.
인도에 있는 자체가 전쟁이었고, 어디를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곤혹스러웠고
몸까지 아프니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저히 해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쯤에서 여행을 그만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까를 고민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인도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만큼 음식도 문화도 다양했다.
나는 인도 특유의 향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래서 여행 내내 아무것도 자유로이 먹을 수가 없었다.
북인도를 여행할 때는 배를 쫄쫄 굶으면서 퀭한 눈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돌아다녔다.
입에 들어가는 게 없으니 나는 점점 더 심하게 아팠고 여행하는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혓바닥엔 여기저기 혓바늘이 울긋불긋 솟아오르고 목구멍은 발갛게 부어올라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빈속에 들이붓는 약은 늘 내 입속에서 독한 약 냄새를 풍겼지만, 마살라 향이 들어간 인도 음식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북인도에서는 음식 때문에 너무 큰 고생을 했다. 작은 도시에는 한국식당도 하나도 없어서 사과와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다.
남인도로 건너오면서 먹을만한 음식들을 만나면서, 또 인도 음식에 서서히 적응되면서 그나마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끝마칠 수 있었다.
인도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교통수단이 바로 기차다.
모든 기차역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작대는지 인구 12억이란 말이 실감 나기도 했다.
인도에서 기차만 제대로 탈 줄 알아도 여행의 반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기차를 타는 일은 외국인들에게는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도 기차는 같은 등급의 객차끼리만 연결되어 있어서 반드시 내가 타고 가야 할 기차의 객차번호를 확인하고 타야 한다.
나는 조금은 안락한 2A 칸(First Class 2 Tier A/C Sleeper)을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기차여행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콜카타에서 바라나시로 갈 때는 내가 지금껏 타본 기차 중에 제일 긴 시간, 무려 17시간이나 기차를 탔다.
델리에서 만난 한국 젊은이들은 38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하니, 내가 탄 17시간은 인도에서는 명함도 못 꺼낸다.
바라나시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간에서는 누군가가 내 운동화 한 짝을 가져가 버려서 아그라에서 운동화를 다시 사야 했지만,
인도 기차여행은 지금껏 타본 기차와는 색다른 특별한 경험이었다.
노 프라블럼! (No Problem)
인도여행 중에 수없이 많이 들었던 말이 노 프라블럼이다.
인도 사람들은 천하태평, 모든 게 '노 프라블럼!'이었다.
그네들은 서두를 이유도 없었고, 특별히 화를 낼 이유도 없었다.
모든 게 좋은 게 좋다는 사고를 가진,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낙천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인도를 여행할 때는 조바심을 내서도 안 되고, 화를 내서도 안 되고,
그저 내 마음을 비우고 다니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음을 비우고 다니는 인도여행만이 바로 '노 프라블럼!'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외국인을 보면 특히 아시아인을 보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얼굴을 빤히 노골적으로 쳐다본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의 시선을 느끼면 만약 혼자라면 두려운 마음마저 들 것 같았다.
델리 시티투어할 때 만난 주황색 터번을 두른 인도인은 나를 보더니 'Good Style!'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웠다.
자그마한 동양 여자가 신기했던지 투어 내내 내 독사진을 여러 장 찍어갔다.
인도에서 나는 그렇게 연예인이 되어있었다. ㅋㅋ..
인도사람들은 정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우리 주변을 한참 돌다가는 수줍은 얼굴로 가만히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 앞에서 인도 부부를 만났는데, 남편되는 사람이 자기 와이프랑 꼭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준 사진이다.
인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빈민가의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12억 인구 중에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인도 갑부들도 많겠지만, 내가 접한 인도인들은 대부분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가난이 단지 그들 탓만은 아닐 것이다. 빈부의 차이는 모든 사회의 필연일 것이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다고 누리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일인 것을 깨달았다.
그들을 통해서 깨닫게 된 내가 가진 많은 것들에 비로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이 열악하다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불행하거나 우울한 것은 아니다.
해맑게 웃는 그들이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는 분명 우리가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결핍되어 보이는 그들의 삶이지만 그들에게는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다.
아마 그것이 그들의 특별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누군가 말하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인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온 여행자라면 인도를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인도에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남루한 그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면서 여행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편칠 않았다.
돈을 달라고 새까만 손을 내밀던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외면해야 했던 순간들이 너무 가슴 아팠다.
약 12억의 거대한 인구를 가진 나라가 바로 인도다.
인도는 옛것과 새로운 것, 빈곤함과 부유함, 무질서와 질서가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불교 발생 국가이지만, 힌두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시크교, 불교, 자인교 등 다양한 종교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는 나라다.
인도는 변화하고 있다. 지금의 인도는 외국투자가 활발히 일어나고 외교와 통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비록 카스트 제도가 뿌리 깊이 박힌 나라이긴 하지만, 인도는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인도는 인구가 12억이나 되는 거대한 시장이다.
우리에게 인도는 아직도 블루오션이 많은 나라가 아닐까.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인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도여행의 적기가 한국의 가을과 겨울에 해당하는 10월에서 2월 사이라고 했지만, 그래서 여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라고 했지만,
10월 초의 인도는 37도를 오르내리는 우리나라 한여름보다 더 덥고 습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리 부부의 고생은 아니 고행은 시작되었다.
인도 콜카타 공항에 밤 12시 넘어서 도착한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안전을 위하여 공항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도라는 나라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곳이어서 늦은 밤에 움직이기는 무척 위험하기 때문이다.
인도여행의 첫 시작은 에어컨이 세게 나오는 공항의 노숙이었다.
그 노숙이 20여 일간의 여정동안 감기와 몸살로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또한, 인도 물갈이로 배탈이 나서 토하고 설사하고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날락할 줄은
또 숨쉬기조차 힘든 덥고 습한 공기와 각종 차에서 내뿜는 매캐한 매연들, 시도 때도 없이 빵빵 울려대는 경적 소리,
각종 오물과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를 맡으면서 여행을 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20일 여정동안 나는 감기와 몸살과 또 인도에 오면 누구나 신고식처럼 치르는 인도 물갈이로 큰 고생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비상약을 모두 다 먹고도 낫질 않아서 인도 약국에서 약을 사고 매일 약을 삼키면서 다녔다.
먹는 것마저 부실해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의 몸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2주를 더 몸져눕고서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찌는듯한 불볕더위에 갈증은 가시지 않고 새까만 먼지와 매연에 목구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강렬한 태양 빛에 얼굴은 뻘겋게 달아오르고 물티슈로 손과 얼굴을 닦으면 새까만 먼지가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매일 호텔 문을 나서면서 전쟁터로 나가는 심정으로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야 했다.
내가 왜 인도에 왔을까 회의가 들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고 없이 일어나는 상황에 황당해 했고, 어이없는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기도 했다.
아비규환, 그 전쟁터에서 나는 20여 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우리 마음속의 안식처라 불리는 인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인도가 제격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길거리에는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들과 거지들이 득실거리지만, 인도 부호들은 그들만의 여유로움과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인도만큼 극과 극을 달리는 유별난 나라도 없는 것 같다.
인도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넘쳐나고 내가 어림잡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였다.
그런 복잡한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부류도 나누어진다고 한다.
인도가 너무 좋아서 다시 가고 싶다는 사람과 고생을 하도 해서 인도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사람이다.
나는 그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인도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나라다.
그런데 인도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나 같은 사람도 시간이 점점 흐르면 인도가 그리워지고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만큼 인도라는 나라가 사람의 마음을 휘몰아치는 강렬한 중독성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인도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든 인도 여행을 간다면 말리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적이고 신비로운 인도가 그리워지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