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괴로움의 바다요, 불붙은 집이라면
감옥은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데다.
게다가 옥중에서 병까지 들어서 병감(病監)에 한정없이 뒹구는 것은
이 괴로움의 세 겹 괴로움이다.
이 괴로운 중생들이 서로서로 괴로워함을 볼 때에
중생의 업보(業報)는 '헤어 알기 어려워라' 한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1.무명(無明) - 이광수(李光洙)
소설가, 호는 춘원(春園). 평북 정주 출신으로,
1910년 일본 명치학원을 졸업하고 오산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다시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1916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고,
이듬해 단편 「소년의 비애」「어린 벗에게」를 「청춘」지에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신문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1919년에는 동경에서 2 ·8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상해로 탈출,
도산 안창호와 함께 임시정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 후 논문 「민족개조론」을 「개벽」지에 발표하는 한편, 「재생」
「마의 태자」「단종애사」「흙」 등의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특히 「무명」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추천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 등과 함께 수감되었다가 반년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그 후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고,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을 하며 친일행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주로 받은 그의 작품은 계몽적이며,
인도주의적인 것으로서 우리나라 신문학사상 큰 공헌을 하였다.
2.줄거리
「무명(無明)」은 1939년에 발표된 단편
'나(진상)'는 투옥된 지 사흘째 되는 날 병감(病監)으로 옮겨진다.
그 곳에서 인장 위조범 '윤', 방화범 '민'과 간병부(신상),
사기범 '정', 공갈범 '강' 등 여러가지의 범죄 혐의와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괴로운 중생'과 한동안 같이 지내게 된다.
그 시대의 병감 생활을 엿보게 해 주는 유일한 작품이다.
3.감상
'병감'이라고 하는, 아주 좁게 한정된 장소에 겨우 손가락 다섯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인간들이 수용되지만, 거기서도 하찮은
욕망이나 미망(迷妄)에 의해 그 인간들 스스로 야기시키는 고통이나
번민은 끝이 없다. 세속의 인간들은 비록 적은 수효가 좁은 장소에 모여도
서로 사랑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여, 그 수효나 장소에 관계없이
고해(苦海)를 이룬다. 작자는 작중 화자인 '나'를 통해서 단언한다.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요 불붙는 집이라면, 감옥은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데다. 게다가 옥중에서 병까지 들어서 병감에 한정없이
뒹구는 것은 이 괴로움의 세 겹 괴로움이다. 이 괴로운 중생이 서로서로
괴로워함을 볼 때에 중생의 업보(業報)는 '헤어 알기 어려워라' 한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병감이라는 이색적인 지역의 모습을 통해서
'왜 우리의 인생은 고해인가'하는 불교적 사색을 유도하고 있다.
4.과제연구
(1) 제목의 '무명(無明)'이란 말은 불교 용어로서, 사견(邪見)이나
망집(妄執)에 싸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 곧 모든 번뇌의 근원을 가리킨다.
이 제목뿐 아니라 작중 화자(話者) '나'의 생각, 행동 등은
이 작품이 불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씌어졌음을 말해준다.
(2) 이광수는 대체로 구성이나 서술에 있어, 자연의 순서에 따르면서
사실성을 중시한 작가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사건의 전개에 있어
복잡한 갈등이나 극적인 전환 같은 것을 보이지 않는 단순한 구성으로
시종하고,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충실히 전달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3) 주인공 '나'는 '괴로운 중생'에 대해 연민의 정을 품고,
그들의 하찮은 욕망이나 미망에 대해서 관대하게 대하고,
혹은 자비를 베풀려고 하는, 다소의 불심(佛心)을 지닌 온건한 인물이다.
하지만 온건함이 지나쳐서 무기력해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 하찮은 욕망이나 미망에 좌우되는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는 일반 불교도의 한 전형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4) 이광수는 대체로 초기에는 개화기적 계몽 사상이나 기독교적
박애정신을 피력하였으나, 후기에는 불교적 허무주의에
기울어진 감이 있다.
그는 불교의 색채가 강한 작품으로 [세조대왕, 1931]
[이차돈의 사, 1935~36], [무명], [꿈(단편), 1939]
[원효대사, 1942], [꿈(장편), 1947] 등을 써냈다.
하지만 계몽주의 문학의 성격이 강한 작품들로써
현대 불교 문학의 기초를 닦은 공로도 크다고 하겠다.
글/러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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