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바라나시

[인도/바라나시] 17시간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가다

러브송. 2016. 1. 15. 12:02

 

 

콜카타 하우라역에서 출발하는 바라나시행 기차는 1시간은 족히 플랫폼에 정차해 있었다.

인도 기차 길이는 정말 길었다. 노랫말에도 있듯이 긴 것은 기차다.

내가 타고 갈 기차 등급의 객차를 찾아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객차 앞에 붙어있는 탑승객 명단에 우리 이름이 있는 걸 확인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 등급은 AC 2 Tier(2A), 에어컨이 있는 위아래 두 칸 침대. 1인요금이 RS.1415(약 25,000원)

 

 

 

 

 

제일 먼저 좌석 밑으로 배낭을 집어넣고 쇠줄 와이어로 단단히 묶었다.

배낭 안에 그렇게 중요한 물건은 없지만, 그래도 분실하면 당장 아쉬운 물건들이 들어있다.

우리 맞은편 아래 칸에는 인도 남자가 탔다. 그래서 나는 2층 칸을 썼다.

2층 맞은 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아서 2층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2층엔 창문이 없어서 좀 답답하고 심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2개의 침대가 아래위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오른쪽에는 4개의 침대가 아래위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꾀죄죄한 커튼으로 영역을 나누어 놓아서 최소한의 사생활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탄 4개의 침대가 있는 경우는 일행이 네 명일 경우에는 아주 편하겠지만,

혼자이거나 두 명일 경우는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므로 불편할 수도 있다.

우리 맞은편 아래 칸에는 인도 남자가 탔다.

여자인 나로서는 인도남자랑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 남자는 우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큰 짐을 의자 아래로 밀어 넣더니, 작은 가방에서 보자기를 꺼내 치마처럼 몸에 둘렀다.

그러더니 긴 바지와 팬티를 벗고 편한 반바지로 갈아입는 게 아닌가.

인도인들은 팬티를 벗고 자나? ㅎㅎ

아무튼, 편한 반바지로 갈아입더니 그대로 누워서 잤다.

아침이 되어 그 남자는 양치를 하고 돌아와 다시 보자기를 두르고

반바지를 벗고 팬티를 입고 바지를 입는 게 아닌가.

그것도 여자인 내 코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늘 하던 일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인도인들은 가장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A.C TWO TIER 칸에는 에어컨과 선풍기가 동시에 가동되고 있었다.

인도 기차는 에어컨 유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택시도 에어컨 틀면 에어컨 가동 비용을 요금의 30% 따로 받았다.

레스토랑도 에어컨이 있으면 똑같은 음식이라도 가격이 훨씬 더 비쌌다.

한 레스토랑에 두 공간으로 나누어 에어컨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으로 나누어 영업하기도 한다.

작은 도시는 에어컨이 있는 식당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도시로 가면 에어컨 식당이 있다.

인도 여행 다니면서 에어컨 바람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운지 모른다.

어떤 날은 호텔에 들어가서야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을 정도니 인도가 여행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이다.

덥고 습한 인도 여행은 여행자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에어컨은 침대 위 칸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내가 누우면 찬바람이 그대로 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가 맹맹해지고 내가 가지고 있던 긴 소매 옷을 죄다 껴입어도 추워서 덜덜 떨어야 했다.

​역무원한테 에어컨을 줄여주던지 이곳만은 제발 좀 꺼달라고 했더니, 에어컨은 끌 수도 줄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에 친절하게도 종이를 뭉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직접 막아주었다.

에어컨 구멍은 막았지만, 바람이 어찌나 센지 막힌 구멍 틈새로 바람이 비집고 나와 여전히 추웠다.

너무 추워서 아래 칸에 자고 있던 남편 담요까지 뺐어 덮었지만, 나는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인도 배낭 여행할 때 침낭을 가지고 다닌다고 하더니 침낭만 있어도 덜 추웠을 텐데.

베트남 호찌민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넘어갈 때 에어컨 버스를 이용했다.

그때도 역시 에어컨 바람이 어찌나 센지 도저히 추워서 그냥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에어컨을 좀 꺼달라고 했더니 끌 수가 없다고 했다. 에어컨을 끄면 에어컨 버스가 아니라고 했다.

에어컨 유무에 따라 버스값이 다르므로 에어컨을 꺼버리면 에어컨 버스가 아니고 일반버스가 된다고 했다.

그때도 할 수 없이 휴지로 에어컨 구멍을 막았던 재미난 추억이 생각난다.

 

 

 

 

추워서 잠은 제대로 못 잤지만, 날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기차는 가다가 멈췄다가 또 가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했다.

인도 기차는 연착이 심하다고 하더니, 이렇게 가다가 쉬다가 언제 도착하려는지 난감했다.

바라나시까지 제시간에 가도 14시간이나 걸린다.

기차는 한동안 아예 멈춰버렸다. 전기공급이 끊어져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인도 기차는 예상치 못한 고장으로 하루를 연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이러다가 정말 오늘 중으로 바라나시에 갈 수는 있을까?

 

 

 

 

하늘이 온통 회색빛이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만큼이나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경도 회색빛이었다.

기차 밖 풍경은 내가 기대했던 전원적 풍경도 목가적인 풍경도 전혀 아니었다.

쓰러져가는 남루한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보는 인도인들도 보였다.

어떤 이는 기차를 쳐다보면서 볼일을 보고, 어떤 이는 궁둥이를 기차 쪽으로 두고 볼일을 보고,

하여튼 가지각색의 유쾌하지 못한 아침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인도 인구 12억 중에 반 정도는 야외에서 용변을 본다고 한다.
집에 화장실이 없는 가구가 농촌은 무려 69.2%, 도시도 18.6%란다.
공공화장실을 만들어 놓지만,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화장실 사용에 익숙하지 않고, 집 가까이에 화장실을 두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좁은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는 것보다는 야외에서 볼일 보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배설물은 부정한 것이고 이를 치우는 것도 최하층민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장실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

기차 내에 있는 화장실도 용변을 보면 배설물이 그대로 철로에 떨어진다.

 

 

 

 

아침 9시가 되자 짜이 파는 아저씨가 짜이~ 짜이~ 하면서 외치고 다녔다.

밤새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따뜻한 짜이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10루피를 주고 마셨는데, 기차간에서 마시는 짜이답게 맛은 그냥 밍밍했다.

머리도 무겁고 해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커피는 팔지 않았다.

오전 내내 기차간에는 짜이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건너편에 탄 인도 여자.

짜이 한 잔을 손에 들고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모습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짜이와 스마트폰이 묘하게 어울렸다.

이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우리 칸으로 성큼 들어오더니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스마트 폰도 충전했다. 우리한테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자기 자리인 것처럼 행동했다.

인도 사람들은 원래 남의 눈치도 안 보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가 보다. ㅎㅎ..

 

 

 

 

짜이와 함께 가지고 간 사과와 바나나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약을 먹었다.

인도 바나나는 정말 달콤하고 맛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인도사과는 저렴하지만, 맛이 떨어지고, 미국에서 수입한 사과는 맛은 있는데 가격이 비쌌다.

미국에서 수입한 사과는 한 개 천 원정도 했으니 인도 물가와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래도 인도 여행하는 동안 바나나와 사과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배곯아 죽었을 것이다. ㅎㅎ..

북인도를 여행하는 동안은 거의 모든 끼니를 바나나와 사과로 때우며 돌아다녔으니까.

 

 

 

 

우리 맞은편에 탔던 인도남자가 내리고, 그 자리에 중년 부부가 탔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영어도 꽤 잘했다.

인도부부는 외국이라곤 네팔을 여행한 게 전부라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서로 나이도 같았다. 인도사람들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것 같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서 그런가 우리보다는 10살쯤 많아 보였다.

그래도 에어컨 칸을 탈 정도면 인도에서는 부유한 편일 것이다.

짐도 짐꾼에게 100루피를 주면서 들도록 하는 걸 보면 아주 잘 사는 모양이었다.

부부의 인상이 부드럽고 넉넉해 보여 같은 공간에 마주 보고 있는 게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기차는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면서 오후 1시 30분경에 바라나시 정션역에 도착했다.

기차는 3시간 연착, 17시간이나 걸려서 바라나시에 왔다.

난생처음 오래 타보는 기차였다. 무려 17시간이나.

바라나시 역 플랫폼에는 역시 수많은 사람으로 도떼기시장 같았다.

인도의 모든 기차역에는 인도인들의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인도다운 곳이 바로 바라나시가 아니었던가.

어머니의 강인 갠지스 강 또한 얼마나 인도다운 곳인가.

바라나시를 다녀와야 인도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가트도 걸어보고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면서 죄를 씻어내는 인도인들도 보고

그래야 진정한 인도의 모습을 봤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라나시는 가고 싶은 도시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가고 싶지 않은 도시였다.

장시간 기차를 타야 하고, 지저분한 환경에 적응하며 여행할 자신이 없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류시화의 여행자를 위한 서시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도의 기차는 편안함을 찾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노리는 사치스런 여행자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소유한 것 없이 지상의 삶을 견뎌낼 줄 아는 자에게 인도의 가치는 열려있다."

 

 

 

 

나는 지상의 삶을 견뎌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무려 17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힌두교 성지,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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