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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부안] 적벽강에서 칠산바다를 지키는 개양할미(수성당 할머니)

러브송. 2009. 12. 4. 22:46
채석강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적벽강이라는 또 하나의 절경이 보입니다. 적벽강은 변산반도 최고의 비경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맑은 물과 붉은 색 암반, 높은 절벽과 동굴 등 빼어난 경치가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변산반도의 낙조를 편안하게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도 바로 이 적벽강입니다.
적벽강은 이름만 강이지 실제 강은 아닙니다. 고사포 쪽에서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이 펼쳐지는 해안선을 적벽강이라 합니다.
하루의 반은 물에 잠기고, 하루의 반만 모습을 드러내는 적벽강.. 고개를 불쑥 내민 사자바위를 중심으로 죽막마을 해변까지 2km에 달하는 절벽해안은 역암과 황토가 뒤범벅된 채로 퇴적 산화되어 불그스름한 색조를 띠고 있습니다.
두터운 적벽은 풍파에 씻기고 부서지면서 세로형 줄무늬를 만들었습니다. 적벽강은 중국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가 노닐던 적벽강과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적벽강에서 봉긋이 솟아오른 언덕 위에는 변산 앞바다를 지키는 수성당이 있습니다. 수성당은 칠산바다를 수호하는 ‘개양할미’라는 여신을 모신 해신당을 말합니다.
수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산죽으로 뒤덮인 터널이 있습니다.
이곳은 죽림동 제사유적 터로 이곳을 죽막동, 또는 대막골이라고 부르는데 대나무를 저장하는 막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투용 화살로 사용된 이곳의 대나무는 조선시대 나라에서 직접 관리했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바다가 보입니다. 수성당 앞으로 보이는 이곳은 소용돌이치는 파도가 여우짓 같이 사람을 홀린다 하여 대마골 여우골이라 부릅니다. 절벽이 마치 굴처럼 파여 깊은 협곡을 이루는데 그 속으로 바닷물이 소용돌이 치며 밀려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곤 합니다.
수성당에서 바라본 낙조풍경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낙조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우며 변산 낙조중 가장 으뜸이랍니다. 적벽강 여우골에서 바라보는 낙조풍경도 이에 못지 않게 장관이라는데, 아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단칸짜리 기와집인 수성당에는 서해의 여신 개양할미가 칠산바다를 수호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서해를 다스린다는 개양할미는 딸 8자매를 데리고 살았으며, 각도에 1명씩 시집을 보내고 막내딸과 함께 바다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키가 아주 커서 굽나막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다니면서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해서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도록 했습니다.
수성당에서는 지금도 매년 음력 1월 3일에 어부들이 무사고와 풍어를 비는 제례를 올립니다.
제장이 되는 당집은 1973년에 복원한 것으로 기록에 의하면 지금부터 200여 년 이전부터 신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당 안에는 정면에 개양할머니를 형상화한 주신도가 있고 좌우벽면에는 산신 혹은 관운장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데, 1960년대에 없어졌습니다. 오랜 세월 서해바다를 지켜오던 개양할미의 흔적도 사라진 듯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해신당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삼한시대의 제기를 비롯한 제사용구들이 발굴되었고, 그 유물은 지금 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양할미는 오랜 세월 바다를 지켜온 셈입니다. 우리 수군이 왜구로부터 잘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전설속의 개양할미에게라도 의지해야 했던 바다사람들에게는 우리 배들을 지켜주었던 개양할미가 든든하면서도 미덥기도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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